A씨는 자신이 보유한 서울 양천구 아파트를 담보로 운전자금 대출 14억원을 신청했다. 운전자금 대출은 사업자가 사업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인건비·광고비 등을 빌려주는 상품이다. A씨는 은행에 원자재 구입 목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A씨는 대출받은 다음 날 서울 서초구 아파트 매매 중도금으로 17억4000만원을 납부했다. A씨는 대출금으로 원자재를 구매했다는 사실을 증빙하지 못해 금융감독원 현장 점검에서 덜미가 잡혔다.

A씨처럼 개인 사업자 대출을 받아 부동산 매매 등 용도 외로 사용하는 꼼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작년 6월부터 주택담보대출(주담대) 한도를 2억~6억원으로 제한하는 '6·27 규제' 시행으로 대출 여력이 줄자 사업자 대출을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다.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뉴스1

24일 금감원에 따르면, 작년 6월 이후 사업자 대출 2만여 건에 대한 금감원 현장 점검 결과 127건(588억원)이 용도 외로 사용됐다. 유용 사례는 사업자 대출금으로 다른 대출을 갚는 데 사용하거나, 친인척·지인 등에게 돈을 빌려주는 등 다양했다. 원자재 구입 목적으로 운전자금 대출 22억원을 받고서 구입 사실을 증빙하라는 금융사 연락을 받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차주도 있었다.

고가 주택을 매매하거나 전세금 반환 등 부동산 거래에 사용하는 사례도 있었다. 양천구 아파트를 구입한 B씨는 해당 주택을 사업장으로 등록하고 사업자 대출 3억5000만원을 신청했다. 하지만 B씨는 받은 대출금을 기존 세입자 전세금 반환에 사용한 뒤 사업장으로 쓴다던 아파트에 신규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

사업자 대출은 용도에 따라 사업 운영과 시설 투자 목적, 창업을 위한 초기 자금 마련 목적, 재창업 자금 마련 목적 등으로 나뉜다. 용도 외로 사용하면 약정 위반을 넘어 불법으로 판단될 수 있다. 은행은 사업자가 제출한 사업 계획서와 매출 자료 등을 검토해 대출을 내주는데, 적발된 사례 대부분은 대출 실행 이후 목적에 따라 사용했는지 증명하지 못한 경우다.

서울 시내 한 은행에 주택담보대출 관련 현수막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사업자 대출은 작년 6월 주담대 한도가 대폭 낮아진 뒤부터 관심이 많아졌다. 인터넷 부동산·대출 커뮤니티에는 사업자 대출을 권하거나 신규 사업자도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홍보글이 많았다.

금융 당국은 사업자 대출 유용 사례가 적발되면 즉시 대출금을 회수하고, 서류를 거짓으로 꾸미는 등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되면 수사 기관에 통보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