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지주사 사외이사를 국민연금도 추천하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가운데, 이 안이 현실화되면 KB금융(105560)이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 전망이다. KB금융은 내년 중순 차기 회장 선임 절차를 밟을 예정인데, KB금융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주요 금융지주사 중 KB금융에 대해서만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예고하고 있다.
18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이달 중 금융지주사 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열 예정이다. 금감원은 지난 5월 '은행지주 및 지배구조 선진화 성과와 향후 계획'을 발표하면서 최고경영자(CEO)의 장기 연임을 관리하기 위해 통제 절차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감원은 사외이사의 다양성 및 독립성 확보, 금융지주 회장 연임 구조 개선 등을 점검할 계획으로 국민연금을 통한 개입을 시도하고 있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지난 10일 금융지주사 회장과의 간담회에서 "전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의 주주 추천 등 사외이사 추천 경로 다양화와 사외이사 임기 차등화 등을 통해 독립성을 갖춘 후보 추천위원회 구성과 공정한 운영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원장이 언급한 '전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은 국민연금으로 해석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국민연금 업무 보고에서 "(국민연금이) 국민 주식을 갖고 있으니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 권한을 심하게 행사하면 국가 자본주의가 되니 그건 안 되지만 최소한의 통제는 해야 한다"며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 강화를 주문했다.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및 시행령에 따르면 국민연금처럼 상장사 지분 5% 이상을 가진 주주는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 일반 투자, 경영 참여 중 하나를 선택해 밝혀야 한다. 국민연금은 주요 금융지주의 지분을 5% 이상 보유 중인데, KB금융의 주식 보유 목적만 일반 투자로 돼 있다. 다른 금융지주사의 주식 보유 목적은 단순 투자다.
단순 투자는 의결권·신주인수권·배당 등 회사 경영과 관계 없이 주주로서 최소한의 권리만 행사하겠다는 의미다. 일반 투자는 경영권에 영향을 줄 목적은 없지만, 주주제안처럼 적극적인 주주 활동을 하겠다는 의미다.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의 임기는 내년 11월까지로 KB금융은 내년 중순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꾸릴 예정이다. KB금융 회추위는 전원 사외이사로 구성되는데, 사외이사 7명 중 5명의 임기가 내년 3월 마무리된다. 국민연금이 KB금융 사외이사를 추천하게 되면 차기 회장 선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다.
신한지주(055550)는 진옥동 회장의 연임이 최근 확정됐고, 우리금융지주(316140)도 차기 회장 선임 절차가 거의 마무리 돼 국민연금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금감원은 이날 홍콩 ELS 불완전판매 관련 제재심을 열 예정이다. 판매액이 가장 많은 국민은행은 조(兆) 단위 과징금이 예상되는데, 제재가 나오면 이의신청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KB금융은 내년에 차기 회장 선임이 예정돼 있고 ELS 과징금으로도 금융 당국과 설전을 벌여야 하는데, 국민연금 사외이사 추천이 시작되면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재명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KB금융의 지배구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금융사 경영에 개입하면 독립성이 약해져 건전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