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 업계가 장기 연체자 빚 탕감 프로그램인 배드뱅크(새도약기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다. 연체 채권을 새도약기금에 넘기는 것보다 시장에서 팔면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은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참여를 권유하고 있지만, 반응은 미지근한 모습이다. 대부 업계가 사회적 책임에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1일 금융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새도약기금에 연체 채권을 팔겠다고 한 대부 업체는 22곳이다. 이는 새도약기금 참여 대상 대부 업체 중 10% 안팎에 불과하다. 참여 업체 중 자산 규모 상위 10위에 해당하는 곳은 2곳뿐인 것으로 파악됐다. 대부 업계 전체 연체 채권의 약 80%를 상위 10개사가 쥐고 있어 대형사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 정정훈 한국자산관리공사장 등 금융권 관계자들이 10월 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새도약기금 출범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뉴스1

새도약기금은 금융위원회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장기 연체자 재기 지원 프로그램이다. 새도약기금은 총 8400억원 규모로 정부 재정 4000억원과 금융권 출연금 4400억원으로 조성되는데, 이 기금으로 금융권이 보유한 7년 이상·5000만원 이하 무담보 연체 채권을 매입해 소각한다. 새도약기금은 은행권이 약 3600억원을 부담하고 생명·손해보험사 400억원, 여신전문금융사 300억원, 저축은행 업계가 100억원을 부담할 전망이다.

캠코에 따르면 새도약기금 대상 채권 중 대부업권 물량은 6조7000억원으로, 카드(1조9000억원)·은행(1조2300억원)·보험(6400억원)·상호금융(6000억원)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정부가 제시한 연체 채권의 평균 매입 가율은 5% 내외인데, 이를 시장에 넘기면 약 20%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100만원짜리 부실 채권을 시장에 처분하면 20만원을 받을 수 있는데, 새도약기금에 넘기면 5만원만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대부업권 물량을 모두 새도약기금에 넘긴다고 가정하면 대부 업계는 시장에서 팔 때보다 약 1조원을 덜 받게 된다. 대부 업계는 연체 채권을 시장에서 팔면 25~30%까지 받는다고 주장하는데, 이 경우 대부 업계의 손실은 더 커지게 된다.

서울 종각역 인근 골목길에 떨어진 대부업체 광고지. /조선DB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대부업계의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연내 참여하는 업체에 '서민금융 우수대부업자' 지정에 준하는 혜택을 거론했다. 우수대부업자는 은행에서 저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 그러나 우수대부업자가 대출 재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은행권에서 조달하는 자금은 전체 자금에서 10%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대부업계가 연체 채권을 새도약기금에 매각하면서 입는 손실을 조금이라도 상쇄할 수 있는 인센티브가 마련되지 않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곳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