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의 한 단위 농협에 근무하는 계장 A씨는 지난 2023년 가상자산 투자 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됐다. A씨는 그해 7월 고령의 조합원 명의를 도용해 1000만원을 대출받았다. 조합원이 고령인 만큼 부당 대출 사실을 빠르게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A씨는 해당 조합원에게 대출이 완료됐다는 문자메시지가 발송되는 것을 전산상 연락처 변경으로 미리 막는 등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A씨는 그해 8월 다른 조합원이 기존에 요청한 추가 대출금보다 4000만원을 더 실행한 뒤, 차액을 자신의 통장에 송금하기도 했다.
A씨는 추적을 피하려고 부당하게 확보한 금액을 사무소 명의 법인 통장에 옮긴 뒤, 자신의 통장에 다시 옮기는 방식으로 반복해서 가로챘다. 그러나 이 과정을 사무소 지점장과 상무는 2023년부터 지난해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A씨는 이 같은 방식으로 2년간 총 12건의 부당 대출을 받아 8억8900만원을 유용했다.
대출 부실 관리로 농협중앙회로부터 징계 조치를 받은 지역 농·축협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지역 농·축협은 금융 당국의 직접적인 감독을 받지 않고 자체 감사에 의존하고 있다. 폐쇄적인 운영 방식 탓에 금융 사고가 잇따르며 건전성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농협중앙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9월 자체 감사에서 지역 농·축협이 대출 부실 관리로 지적(권고, 업무개선, 주의, 주의촉구, 문책, 문책위임)받은 사례는 총 870건에 달했다.
이 중 최고 수위 지적인 '문책' 또는 '문책위임' 조치를 받은 사례는 총 23건이었다. 문책과 문책위임은 사안이 중대한 금융 사고에 대해 신속한 수습을 지시하는 것을 뜻한다. 동시에 임직원에 대한 정직, 해임 등 인사 제재와 법인에 대한 유통 지원금 공급 중단이 함께 이뤄진다. 유통 지원금이 끊기면 조합원들이 판매하는 농산물의 운반 비용이 상승해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사실상 징계에 해당하는 조치다.
지난해 한 해 동안 대출 부실 관리로 문책, 문책위임 조치를 받은 조합은 44곳으로 전년보다 91.3% 급증했다. 문책, 문책위임 사례 중 대다수가 직원의 대출 취급 소홀로 손실이 발생한 건이었다. 그러나 직원이 의도적으로 타인의 명의를 도용해 대출을 실행하거나 횡령한 사례도 꾸준히 일어났다. 2023년부터 올해 9월까지 지역 단위 농·축협에서 직원의 명의 도용 대출은 16건, 대출금 횡령은 5건 발생했다.
최근 금융 사고가 발생한 일부 지역 농·축협은 건전성이 악화했다. 전북 전주의 한 단위 축협은 지난해 대출 심사를 부실하게 진행한 탓에 2억5000만원의 손실을 냈다. 이 여파가 이어져 올해 상반기에도 2억7000만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지역 농·축협은 다른 금융사에 비해 영업 규모가 작아, 한 차례의 대출 사고에도 실적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역 농협에서 대출 부실 등 금융 사고가 급증하며 건전성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농협중앙회 차원에서 대출 심사 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고, 금융 당국도 직접 나서 부실 관리 사고가 발생한 조합에 대해 자구책을 요구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임미애 의원은 "상호금융은 조합원 중심의 협동조합 금융으로, 상호부조 등 조합원을 위한 목적에 활용돼야 한다"며 "그러나 내부 통제 실패로 부실과 불법 대출이 잇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역 농협의 상호금융 건전성 회복을 위해 강력한 내부 통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