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달리3

저축은행이 올해 1분기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익스포저(위험 노출액) 비율을 40%포인트 넘게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법상 PF 사업 자금의 20% 이상을 시행사가 자기자본으로 충당해야 하는데, 금융 당국이 지난해부터 이 규제를 한시적으로 유예해 주고 있어서다.

제도 유예가 되면 자본 확충 부담이 없어진 시행사의 PF 경매 참여도가 높아지고, 저축은행은 부실 채권을 빠르게 털어낼 수 있다. 올해 연말에 유예 기간이 만료되는 만큼, 저축은행은 부실 PF 정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4일 나이스신용평가의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저축은행(신용등급 보유 14개 사)의 자기자본 대비 PF 비율은 72%로 집계됐다. 저축은행의 2023년 자기자본 대비 PF 비율은 114.7%였는데, 1년 3개월 만에 42%포인트를 정리한 셈이다.

부동산 PF는 분양 수익을 담보로 개발 자금을 빌리는 투자 방식이다. 국내 부동산 PF 시장은 코로나19 극복과정에서 크게 늘어난 공급 등의 영향으로 2020~2022년 사이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이후 금리상승, 고물가와 고환율 등 대내외 여건 악화에 따른 미분양 증가, 원가 상승, 분양률 하락 등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이 때문에 2022년 하반기부터 사업성이 빠르게 악화했다. 시행사들이 대출 원리금 상환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면서, 저축은행의 수익성도 크게 줄었다.

금융 당국은 지난해 5월부터 저축은행 PF 경·공매 매입 자금 대출을 받는 시행사의 자기 자본 확충 의무를 유예하고 있다. 저축은행의 부실 PF 정리 독려를 위해서다. 규정상 저축은행은 부동산 개발 사업 자금의 20% 이상을 시행사 자기자본으로 충당한 사업에만 부동산 PF 대출을 내줄 수 있다. 자기자본이 거의 없는 시행사가 사업 실패 시 손쉽게 도산하고 부실을 저축은행에 떠넘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뉴스1

다만 저축은행이 부실 사업장을 경공매 등으로 처분한 후 새 시행사가 들어와 사업을 재구조화한 경우엔 '20% 룰'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새로운 시행사가 부실한 개발 사업이 경매에 나오게 되면 적극적으로 매입하고 다시 구성해, 장기적으로는 부동산 시장 전반의 부실을 털어낸다는 게 금융감독원의 구상이다. 금감원은 유예 기간을 올해 연말까지 연장한다고 밝혔다.

저축은행 입장에서는 규제 유예 기간인 올해 안에 부실 PF 정리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다. 저축은행중앙회는 지난해 5400억원 규모의 PF 부실채권을 정리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1조4000억원의 PF 부실채권을 정리한 상태다. 이를 통해 2년 사이 금융위원회가 매기는 PF 사업평가 기준에서 가장 낮은 '부실우려' 채권 약 2조원을 대부분 정리했다. 저축은행중앙회가 아닌 개별 저축은행이 각자 정리한 채권까지 합치면 더 큰 규모일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저축은행은 부실 PF를 정리하고 수익성도 빠르게 회복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국 79개 저축은행은 PF 대출 부실 확대로 인해 지난해 4000억원 가까이 적자를 냈다. 2023년 5758억원에 이어 2년 연속 대규모 적자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PF 관련한 문제에서 금융 당국이 가장 주목했던 업권이 저축은행이다 보니 관련 부실 채권 정리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라며 "규제 유예 기간 연장이 불투명한 만큼, 올해 안에 최대한 많은 채권을 정리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