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달리3

금융 당국이 가상자산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올해도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거래는 사실상 쉽지 않아 보인다. 국내 투자자는 물론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협회 등 자본시장 기관까지 가상자산을 미래 먹거리로 전망하고 있는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8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1년 동안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매수한 해외 종목 상위 50개 중에는 가상자산 관련 종목과 ETF가 다수 포함됐다. 대표적으로 세계에서 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보유했다는 기업 마이크로스트래티지가 약 5조5000억원 거래됐으며, 글로벌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도 2조원 넘게 거래됐다. 특히 투자자들은 국내에서 거래가 금지된 가상자산 현물 ETF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데, 대체 투자처로 거래 가능한 비트코인 관련 선물 ETF도 6조원 넘게 사들였다.

가상자산 ETF 투자에 대한 관심은 최근 자본시장 관계 부처들의 신년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신년사를 통해 새해 중점 추진사항으로 가상자산 ETF 등 신규 사업을 국내 자본시장의 새로운 영역으로 모색해 나가겠다고 공표했으며,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도 신년사에서 미래 먹거리로 토큰증권(STO) 법제화와 가상자산 ETF를 지목했다.

거래소나 금투협을 포함한 자본시장에서는 비트코인을 시작으로 가상자산이라는 상품군이 제도권에 편입돼 새로운 수익원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지난해 1월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한 뒤 1년도 채 안 돼 약 350억달러(약 51조원)가 넘는 자금이 시장에 유입됐다.

이어 지난달에는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 ETF 운용자산 규모가 1290억달러(약 185조원)를 돌파하며 미국 금 ETF 운용자산 규모를 뛰어넘기도 했다. 해외 시장에서는 비트코인이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을 제쳤다는 소식에 주목했다. 그만큼 투자자들의 신뢰와 관심이 높아졌다는 의미로, 외신들은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되면서 가상자산이 제도권은 물론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투기 자산 이미지에서 벗어나 기존 금융권의 자산군에 안착했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주요 가상자산 관련 공약. /해시드오픈리서치 제공

그러나 가상자산 ETF 투자가 활발한 해외 시장과 달리 국내에서는 올해도 ETF 승인이 미지수다.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를 담당하고 있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가상자산과 관련해 여전히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전부터 비트코인 ETF에 부정적이었던 김병환 금융위원장의 신년사에서는 가상자산 관련 계획은 언급되지 않았으며 감독체계를 고도화하겠다고만 짧게 밝혔다. 이복현 금감원장의 신년사에서도 가상자산은 언급되지 않았다.

지난해 1월 금융위원회는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해 현행법상 금융투자 상품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내놓으며 중개 거래를 금지했다. 현물 ETF는 기초자산으로 구성된 기초지수를 추종해야 하는데, 자본시장법상 기초자산의 범위는 금융투자상품과 통화, 일반상품, 신용위험 등이다. 가상자산은 기초자산의 요건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선물 ETF에 대해서는 관행대로 거래되도록 뒀는데, 선물 ETF는 시카고상품거래소(CME)를 비롯해 이미 세계 금융 당국에서 관리와 감독을 받고 있는 계약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미 전 세계에서 가상자산의 제도권 편입이 활성화되고 있고 이달 트럼프가 집권하면 이런 흐름은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며 “당국에서는 법리해석의 차이로 비트코인 현물 ETF를 금지하고 있는데 필요하다면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국내 가상자산 관련 제도를 신속히 완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