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지난해 연말 퇴직연금 유치 전쟁에서 치열한 마케팅 경쟁을 펼쳤습니다. 올해 기준금리 인하로 은행권의 성장 정체가 예상되는 가운데 새 먹거리로 쓸만한 비이자이익 수익원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퇴직연금 갈아타기’까지 가능해지면서 은행이 증권사로의 퇴직연금 이탈을 막기 위해 사활을 건 모습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마케팅으로는 ‘스타 마케팅’이 있습니다. 은행들은 가수 아이유, 안유진 등 유명 연예인을 브랜드 모델로 기용했습니다. 익숙한 연예인을 통해 어렵게 느껴졌던 퇴직연금도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새로운 브랜드 출시와 이벤트, 새 서비스 도입 등도 치열했습니다. 하나은행은 금융권 최초로 연금 수령 브랜드인 ‘하나 더 넥스트 IRP’를 이달 선보일 예정입니다. 은퇴 후 목표자금, 연금 운용 전략 등을 사전에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서비스입니다. 신한은행은 ‘IRP 계좌 개설 간소화 서비스’를 도입하고, 국민은행은 수수료 면제, 추가 보너스, 금리 우대 등 실물이전 이벤트를 열기도 했습니다.
이런 은행권의 움직임은 지난해 10월 시행한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와 연관이 있습니다. 증권사들이 퇴직연금 시장에서 영토를 확대하기 위해 치열한 마케팅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은 조직개편을 단행하면서도 연금혁신부문을 신설하고 부서를 확대하는 등 연금사업부문에 힘을 실었습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업권별 퇴직연금 점유율은 은행이 210조원(52.6%)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다음으로 증권이 96조5328억원(24.1%), 보험이 93조2654억원(23.3%) 순입니다. 은행이 여전히 가장 많은 파이를 차지하고 있지만 갈아타기로 업권별 이동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해진 것입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는 퇴직연금 실물이전제가 도입된 지난해 10월 31일부터 한 달간 실물이전을 통해 총 954억원의 퇴직연금이 순유입됐습니다.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에서는 다른 금융사로 이탈이 있었지만, 은행들이 확정급여형(DB) 영업에 나서면서 전체적으로 플러스를 기록했습니다.
이런 경쟁은 은행들의 비이자수익 둔화세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이자이익의 경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성장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이자이익 감소에 뚜렷한 비이자이익도 없어 은행 성장세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은행들이 이자이익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비이자이익을 늘리려 안간힘을 쓰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주가연계증권(ELS)을 비이자이익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삼고 공격적인 투자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올해 초 불완전판매 이슈로 ELS 판매가 중단되면서 판매수수료 성장, 나아가 비이자이익 성장에 제한이 걸렸습니다. 은행들도 ‘아 ELS로도 안되겠다, 믿을 건 퇴직연금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비이자수익을 낼 만한 것이 사실상 없다시피 한 상황이지 않냐”며 “요새는 은행에서 퇴직연금을 들면 치약 같은 선물을 한 아름 안겨주던데, 그만큼 퇴직연금 시장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올린 은행들의 올해 실적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