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부업체에서 폰지사기(다단계 금융사기)로 의심되는 2000억원 규모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정식으로 등록된 금융사에서 7년 동안 위법 행위가 이어졌지만 금융 당국은 감독·검사 권한이 없어 이를 막지 못했다. 감독 권한이 있는 서울시는 그동안 불법 사업을 알아차리지 못해 사고 규모를 키웠다. 서울시는 최근 발생한 사고 사실조차 뒤늦게 파악한 채 지금의 상황을 방관하는 중이다.
26일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강남구에 사무실을 둔 대부업체 P사 대표 이모씨는 2017년부터 무허가 투자 사업을 벌이다 이달 중순쯤 잠적했다. 이 회사는 6개월 이하 단기 중소기업 매출 채권에 투자하면 연 10~30%대 수익을 더해 투자금을 돌려주겠다며 돈을 끌어모았다. P사는 강남구에 정식 등록된 개인 대부업체다. 등록 대부업체는 대출 업무만 할 수 있지만 P사는 회사 홈페이지와 대면 영업 등을 통해 채권 투자 영업을 지속했다.
P사의 투자 사업은 불과 지난달까지 순조로운 듯 보였다. 7년 동안 투자금 상환 및 이자 지급에 문제도 없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지난달 중순부터 일부 투자금 상환이 늦어지기 시작했다. 이달 들어서 투자금 미상환 규모는 더욱 커졌다. P사는 단순 상환 지연이라고 해명했으나 최근 회사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이씨는 투자자의 연락을 피해 잠적했다. 현재까지 피해를 주장하는 투자자는 800여명이다. P사 영업에 가담한 조직에 따르면 미상환 투자금 규모는 2000억원에 육박한다.
이번 금융사고는 서울시와 금융 당국의 관리 공백 속에 발생했다. 대부업체는 금융위원회 등록 업체와 지방자치단체 등록 업체, 두 종류로 나뉜다. P사는 후자에 속한다. 현행법상 지자체 등록 대부업체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은 지자체에 있다. 금융 당국은 지자체 등록 대부업체를 감시할 권한이 없다. 이 덕분에 P사는 지난 7년간 대부업 범위를 벗어난 사업을 하면서도 금융감독원의 제지를 피할 수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이 지자체 등록 대부업체를 상대로 감독 및 검사를 할 수 없다”며 “현재 P사 사건에 대해 인지하고 있으나 현장검사 등 P사에 대한 후속조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감독 책임이 있는 서울시는 P사의 불법적인 투자금 모집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조선비즈 취재가 시작되자 해당 사건을 파악했다. 앞서 서울시는 올해 700개 가까운 대부업체를 점검했다. 이때 자산 규모가 큰 업체를 위주로 점검하느라 개인 업체인 P사는 점검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상 징후를 포착할 마지막 기회를 놓친 셈이다. 심지어 대부업 관련 업무를 맡은 서울시의 두 부서는 자기네 업무 소관이 아니라며 서로에게 관리 책임을 떠넘기며 팔짱을 끼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는 대부업법 위반 관련 행정 처분만 내릴 수 있다”며 “형사법상 위법 행위인 유사수신행위에 대해선 별도로 조치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서울시 차원에서 수사의뢰 등 후속조치를 따로 취하지는 않을 예정이다”라며 “다만 민원이 많이 들어와 이번 주 안에 P사 사무실에 방문할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80명에 가까운 투자자들이 서울 강남경찰서 등에 이씨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자들은 P사가 신규 투자자의 돈을 기존 투자금 상환에 돌려막는 폰지사기를 벌였다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와 유사수신행위 혐의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조선비즈는 이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이씨는 전화기를 꺼둔 채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