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과 재무적투자자(FI) 어피너티 컨소시엄 사이에서 벌어진 ‘풋옵션(주식을 특정 가격에 팔 권리) 분쟁’에 대한 국제중재재판 결론이 나오면서 신 회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앞으로 신 회장 측이 원하는 상황으로 흘러가도 최소 1조2000억원이 넘는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20일 보험업계 등에 따르면, 국제상업회의소(ICC)는 신 회장에게 감정평가인을 선임해 풋옵션 가격을 산정하고, 이를 어기면 매일 간접강제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8년 넘게 지속된 어피너티의 풋옵션 행사 분쟁을 마무리하기 위한 첫 단계가 시작되는 셈이다.
앞서 어피너티는 2012년 9월 교보생명 지분 24%(492만주)를 1조2054억원(주당 24만5000원)에 사들였다. 그러면서 2015년 9월까지 교보생명의 기업공개(IPO)가 무산되면 ‘어피너티가 신 회장 측에 주식의 공정시장가치(FMV)와 매입가격 중 큰 금액으로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담았다.
어피너티는 교보생명의 IPO가 불발되자, 딜로이트안진을 평가기관으로 선정해 교보생명의 주당 가치를 41만원으로 책정하고 풋옵션을 행사했다. 하지만 신 회장이 이를 거부하자 2019년 3월 ICC에 첫 번째 중재신청을 했다. 어피너티 주장처럼 주당 가치가 41만원이라면 풋옵션 가격은 2조원으로 8000억원이 넘는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반면 신 회장 측은 주당 가치가 20만원 미만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 8월 골드만삭스 등으로부터 자사주 2%를 매입할 당시 주당 가격이 19만8000원이었다는 것이 근거다. 신 회장 측은 평가기관이 어피너티에 유리하도록 교보생명의 가치를 부풀려 책정했다고 주장했고, 검찰도 딜로이트안진 관계자 5명을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으나 1·2·3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ICC 판결에 따라 신 회장 측은 한달 내에 풋옵션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 신 회장이 주장한 가격과 어피니티가 제시한 가격과의 차이가 10% 이상 벌어지면 제3의 평가기관을 선정해야 한다. 어피너티가 세 곳을 제시하고 신 회장이 한 곳을 선택하면, 이 기관이 최종적으로 가치를 측정하는 순서다.
신 회장 희망대로 주당 가치가 20만원 미만으로 결정돼도 어피너티는 계약서상 ‘큰 금액’인 주당 24만5000원(매입가격)으로 풋옵션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로 흘러가도 신 회장은 1조2000억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주당 가치가 30만원 이상으로 정해지는 최악의 경우가 되면 1조5000억원 이상을 끌어모아야 한다.
신 회장은 중재 취소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패소하면 신 회장은 새로운 투자자를 찾거나, 교보생명 지분(36.7%)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야 한다. 다만, 신 회장 주장대로 주당 가치가 20만원 미만인 상황에서 24만5000원의 풋옵션을 받아줄 투자자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교보생명의 신용등급이 좋아 자금을 끌어모으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교보생명은 신 회장의 경영권과 지배구조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교보생명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없다”라며 “그간 분쟁 과정에서 일어난 주주 및 기업 가치 훼손을 정상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