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뉴스1

탄핵안 가결에도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1450원대를 넘어서며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본비율과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등 건전성 지표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국내 은행들의 관리 여력이 충분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달러 이탈이 가속화될 경우를 대비해 당국도 LCR 규제 완화 등을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

19일 한국은행의 ‘2024년 제22차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따르면 금통위원들 사이에서도 이와 관련된 우려가 오간 것으로 보인다. 한 금통위원은 “원·달러 환율이 높은 수준을 지속함에 따라 각종 규제비율이 하락하더라도 금융기관의 외화 LCR 비율이나 BIS 자본비율이 양호해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금융기관들은 환율 상승 시 BIS 자본비율 등을 현 수준에서 유지하기 위해 위험가중자산 매각, 대출 축소 등 자금 조달과 운용 행태를 바꾸면서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 줄 것”이라고 당부했다.

통상 원·달러 수준이 높아지면 은행의 대표적인 자산 건전성 지표인 BIS 자기자본비율과 유동성 지표인 외화 LCR이 악화된다. BIS 자기자본비율은 은행의 자기자본을 위험가중자산(RWA)으로 나눠 계산하는데, 환율이 오르면 외화 자산 익스포저(위험노출)가 늘면서 분모인 위험가중자산이 증가해 BIS 자기자본비율이 감소하게 된다.

외화 LCR 비율은 앞으로 30일간 은행이 순외화 유출에 대비해 쌓아둬야 하는 달러·미국 국채 등 고유동성 자산의 비율이다. 환율이 오르면 파생거래 담보를 더 많이 내게 되고 외화예금이 감소하는 등의 경로로 LCR이 줄어든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환율은 2주일 만에 36원이나 뛰면서 지난 17일 주간거래 종가가 1438.9원을 기록하는 등 고환율이 지속되는 가운데 시중은행이 지표 고민에 나선 이유다.

이미 계엄사태 이전부터 고환율로 인한 건전성 지표 악화 우려는 계속돼왔다. 지난달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연말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수준을 유지하면 금융사 BIS 비율에 부담이 되고, 만약 환율이 1400원으로 끝나게 되면 BIS 비율 맞추는데 굉장히 어려워질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각 금융사는 자산을 줄여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코스피지수 및 환율 등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다음 달부터 시행될 LCR 정상화를 원·달러 환율이 안정화될 때까지 미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위해 LCR을 100%에서 85%까지 낮췄다가 이후 단계적으로 올해 7월부터 97.5%로 규제하고 있다. 당국은 은행 LCR 규제비율을 내년 1월 1일부터 100%로 환원하기로 했다.

30일간 외화순현금유출액 대비 외화 고유동성 자산의 비율을 뜻하는 외화 LCR 기준은 현재 80%다. 만약 LCR 비율이 80%라면, 30일 동안 순유출 외화 예상액을 10억달러로 가정하면 8억달러 이상은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만약 정부가 이 비율을 하향 조정해 완화하게 되면, 은행 입장에서는 달러 확보에 대한 압박이 줄어 달러 공급이 원활해질 수 있다.

당국은 현재 은행권의 LCR 관리 여력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지난 9월 말 기준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은 평균 157.3%로 규제수준을 상회했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장기적으로 달러 이탈이 가속화할 우려도 여전히 남아있는 등 ‘언제 위기가 닥칠지는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외화 자산과 부채를 스퀘어(균형 잡힌) 수준으로 관리하는 등 환율 움직임에 따른 손실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은행들의 LCR도 현재는 높은 편이라 리스크 대응에는 지장이 없지만 환율 상승 추이와 자금 이탈 등을 고려해 보수적인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