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서희

매번 ‘이자장사’ 비판을 받는 국내 은행의 비이자이익 비중은 실제로 해외 은행보다 매우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의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비교해 봐도 국내 은행은 해외 은행보다 크게 뒤처졌다. 국내 은행이 사업을 다각화하려 해도 규제에 가로막히는 측면이 있지만, 외환수입 수수료 확대와 신탁 활성화 등 현실적인 방안 내에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美, 예금계좌유지 등 수수료이익↑… 日은 비금융업무 허용

18일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와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지난 2022년 말 기준 미국 상업은행의 총이익 대비 비이자이익 비중은 32.1%에 달한 반면 국내은행은 5.7%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연합회 조사 결과 2022년부터 지난 10년간 미국 은행권의 평균 ROE는 10.2%에 달한 반면 한국 은행권의 평균 ROE는 5.2%에 불과했다.

국내 은행의 수익성이 미국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비이자이익 비중이 낮은 영향이 크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원은 “비이자이익을 확대한다고 해서 항상 은행의 수익성이 개선되진 않지만, 글로벌 100대 금융회사의 비이자이익 비중과 시가총액 간에는 정(+)의 관계가 나타난다”며 “비이자이익 업무의 확대는 자산 중심의 성장 한계를 극복하고 은행에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시켜 지속 가능한 수익 기반을 마련하게 해 준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우 비이자이익 비중이 높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로 예금 계좌 유지 수수료 등 수수료 수익이 꼽힌다. 미국과 캐나다 등에 존재하는 예금 계좌 유지 수수료는 말 그대로 계좌 관리에 대한 수수료를 고객에게 부과하는 제도다. 이들 국가는 예금 계좌 유지 수수료가 수수료 수익의 10~15%를 차지한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 은행들은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고 고객의 결제계좌나 카드 거래 데이터를 분석해 의미 있는 규모의 자산관리수수료도 확보하고 있다. 높은 ROE를 자랑하는 미국 시중은행 웰스파고(Wells Fargo)와 캐나다의 로열뱅크오브캐나다(RBC) 등 주요 은행들은 수수료 수익 중 자산관리 수수료 비중이 각각 49%, 33%로 매우 높은 편이다.

일본의 경우 당국 차원에서 업무범위 규제를 완화해 주는 방식으로 은행의 비이자이익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 금융 당국은 2018년 은행이 계열사를 통해 핀테크, 지역상사 등 비금융업무 수행을 허용한데 이어 디지털, 지역경제, 지속가능 사회를 위한 업무 등을 허용하는 내용의 은행법도 개정했다. 은행의 비금융업무 수행으로 비이자이익 확보 등 수익성 제고는 물론 금융업무와의 시너지 창출도 노린 것이다.

서울 시내에 설치된 주요 은행 현금인출기 모습. /연합뉴스

◇ “韓, 외환수입수수료·신탁업무 확대 등 현실적 대안 있어야”

한국도 현실적인 방법으로 비이자이익을 늘리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예금 계좌 유지 수수료 같은 경우 국내에서는 부과하기 쉽지 않다. 국민 정서상 반감이 커 수신 관련 수수료 징수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한국씨티은행에서 계좌유지수수료 제도를 도입했지만 거센 비판에 여러 예외 조항을 두며 유명무실해진 사례도 있다.

국내 은행이 가장 먼저 비중을 늘릴 수 있는 수수료 부문은 ‘외환수입수수료’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현실적으로 은행들이 투자하지 않고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부분이라는 조언이다. 현재도 은행의 비이자이익은 외환수입 수수료에서 발생하는 비중이 높지만, 환전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고 은행들이 트래블카드 등 외환수익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에서 이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의 비금융업무인 신탁 수익도 확대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불완전판매에 따른 판매 중단 여파로 올해 상반기 말 기준 4대 은행 특정금전신탁 잔액은 95조원으로 3개월 만에 10조원가량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이 당국에 요구하고 있는 불특정금전신탁(상품을 고객이 특정하지 않고 은행이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한 뒤 수익금을 나눠 주는 실적 배당 상품) 허용도 되지 않고 있어 이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신탁업을 고령화 시대 맞춰서 별도 상품으로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비이자이익을 확대해야 수익 창출의 기반이 될 수 있다”며 “이렇게 비이자수익이 늘어나야 고금리 상황에 은행이 ‘뽑아먹으려고 하는’ 행태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미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 역시 “일본 은행들의 다양한 비금융업무 수행은 기존의 예대업무 위주의 수익모델을 다각화해 비이자이익 확보를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금융업무와의 시너지 창출도 가능하다”며 “국내에서도 은행 등의 플랫폼 비즈니스 허용 등 업무영역 확대가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은행들은 일본 은행 등의 사례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