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은행 요구불예금이 지난 두 달간 15조원 넘게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구불예금은 보통예금, 급여통장 등으로, 금리가 연 1% 미만으로 낮은 대신 입출금이 자유로워 ‘투자 대기성 자금’ 성격이 짙다. 금리 인하기에 접어들며 가상자산, 해외 주식 투자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자 자금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수시입출식예금 포함) 잔액은 11월 말 기준 608조4354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월 대비 5조1607억원 감소했다. 지난 10월엔 요구불예금이 9조9236억원 줄어, 두 달간 총 15조844억원이 급감했다.
요구불예금이 감소했다는 것은 다른 투자처로 이동한 자금이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다. 요구불예금은 금리 인하기엔 부동산·주식 시장 등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정기 예·적금에 돈을 넣어 굴리는 것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이런 추세는 10월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 후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3년 2개월 만에 기준 금리를 인하하며 글로벌 ‘피벗(통화정책방향 전환)’ 대열에 합류한 데 이어 지난 달엔 깜짝 추가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트럼프 트레이드(트럼프 수혜 자산에 투자하는 것)’ 열풍이 불며 가상자산 투자가 크게 늘어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등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의 하루(24시간) 거래 대금은 지난달 12일 이후 20조원대를 기록 중이다. 가상자산 대표주 비트코인이 10만달러에 육박했던 22일엔 거래 규모가 30조원을 넘기도 했다. 지난 6일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기 전만 해도 가상자산 하루 거래 대금은 3조원대에 불과했다. 한 달 새 거래 대금이 10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미국 등 주요국 증시의 활황도 한몫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보관 금액은 지난달 처음으로 1000억달러(약 140조원)를 돌파했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50% 이상 증가한 수치다. 트럼프 대통령의 친기업 정책이 미국 경제 호조 기대감을 높이며 투자로 이어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내 주식 시장이 지지부진하자 투자자들이 눈을 돌린 것이란 평가에도 무게가 실린다.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연 3%대 정기 예·적금으로 돈이 흘러 들어가는 조짐도 나타난다. 가상자산·주식 등 변동성이 큰 대체투자 시장에 투자하는 것을 꺼리는 투자자들은 시장금리가 연 2%대에 진입하기 전 예·적금 가입을 서두르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한은의 첫 기준금리 인하는 시장이 예견했던 결과였던 만큼 수신금리에 미치는 영향이 적었으나, 지난달 금리 인하는 예측이 불가능했던 것이라 시차를 두고 시장금리에 반영이 되고 있다”며 “연말, 연초 특판 등을 노리는 것이 막차를 타는 데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날 기준 12개월 만기 정기예금 상품 총 37개의 금리(우대금리 포함)는 연 2.8~3.6%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