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빗썸라운지 시황판에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는 모습. /뉴스1

가상자산보험이 출시 6개월 만에 유명무실해졌다. 대형 가상자산 거래소는 자체 잉여 자금으로 준비금을 적립했고, 중소형 거래소 보험 가입률은 저조하다. 보험사 입장에서도 상품 출시는 했지만, 이도 저도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2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5대 가상자산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중 가상자산사업자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한 거래소는 고팍스가 유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팍스는 삼성화재의 가상자산사업자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했다.

가상자산보험은 해킹이나 전산장애 등 사고 발생 시 신속한 보상으로 고객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보장 상품이다. 보험 보장 범위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법) 시행령 12조에 따라 ▲접근매체 위조나 변조 ▲전자적 거래 전송이나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 ▲부정한 방법으로 획득한 접근매체 사용 ▲해킹 등을 통한 정보통신망 공격 ▲금융위원회가 추가로 정하는 사고를 포함한다.

국내에서 가상자산보험은 지난 7월 출시됐다. 당시 삼성화재, DB손해보험, 현대해상, 메리츠화재, KB손해보험 등 11개 손해보험사가 금융 당국에 약관 심사를 신고했다. 가입 금액은 최소 5000만원이며 위험도가 높을 경우 금액은 이보다 더 비싸진다.

하지만 도입 후 6개월이 지나가고 있음에도 상품 가입률이 저조하다. 금융정보분석원 등에 따르면 준비금 적립이 가능한 대형 원화마켓 거래소를 제외한 코인마켓 22사 중 보험에 가입한 사업자는 9곳에 불과해 절반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상자산보험은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용자보호법)에 따른 거래소 갱신 심사 통과를 위해서 집중적으로 검토되는 요소 중 하나다. 가상자산사업자는 준비금을 적립하거나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해야 사업자 갱신을 통해 영업을 이어갈 수 있다.

가상자산업계 한 관계자는 “규모가 큰 거래소들은 잉여 자금을 통한 준비금으로 법적 요건을 충족하기 때문에 보험 가입을 할 필요가 없다”면서 “중소형 거래소가 주로 보험 가입 대상인데, 문을 닫을 정도로 어려운 거래소가 많은 상황에서 보험 가입 자체가 부담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보험사 입장에서도 가상자산보험은 계륵 같은 존재라고 한다. 법 시행에 따라 만들기는 했지만 수익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시장 점유율을 보면 업비트가 약 70%로 압도적인 1위다. 나머지 파이를 나눠 갖는 소형 거래소 중에는 폐업을 고려해야 할 정도로 경영이 어려워 가상자산 보관이나 관리가 부실할 가능성이 크다. 사고가 났을 경우 배상책임을 보장해야 하는 보험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가상자산보험을 출시하기는 했지만 여러 이유 때문에 홍보 활동도 거의 안 하고 있는 상황이다”라면서 “앞으로도 업계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가상자산보험이 자리 잡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