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높은 연봉에 정년이 보장되는 안전성. 굵직한 금융기업들을 감시·감독한다는 명예까지. 금융감독원은 금융공기업 취업 준비생 사이에서도 ‘S티어’, ‘신의 직장’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몇 년 전부터 금감원에서는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줄줄이 퇴사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한 자릿수에 머물렀던 금감원의 20대와 30대 퇴사자 수는 두 자릿수로 뛰어올랐고 올해는 앞자리수도 갈아치웠는데요. 특히 올해는 연말이 아닌 10월까지의 20~30대 퇴사자 수가 지난해 전체 퇴사자 수를 넘겼습니다.

29일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실이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금감원 연령대별 의원면직(자발적 퇴사)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20대와 30대 퇴사자 수는 각각 8명, 14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최근 5년간의 20~30대 퇴사자 수를 살펴보면 ▲2019년 7명 ▲2020년 7명 ▲2021년 6명 ▲2022년 13명 ▲2023년 17명 ▲2024년 22명(10월 말 기준)이었습니다. 또한 전체 부서(82개)의 45%(37개)에서 정원보다 현원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은 금감원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금감원은 올해 2월 외부 컨설팅 계획을 세웠고, 지난 4월에서 6월까지 글로벌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를 통해 조직 진단 컨설팅을 받았습니다. 해당 컨설팅 사업을 위해 예산도 5억원이나 책정했습니다. 금감원 직원들 사이에서는 빠르면 하반기부터 개편된 조직 체계나 업무 분장이 적용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컸다고 합니다.

하지만 직원들은 연내 발표한다던 컨설팅 결과를 올해가 다 가도록 전달받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외부에 공개된 정보도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서였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딜로이트는 인사와 문화 관련해 제도를 개선할 것을 조언했습니다. 이를 위해 직무조사 등을 통한 ▲효율적 인력 관리 ▲조직문화 협의체 구성 ▲업무 디지털화 및 워크 다이어트(Work Diet)를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워크 다이어트는 중복 업무 삭제, 비효율 업무 축소 등을 의미합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금융감독원

컨설팅 결과처럼 금감원 젊은 직원들의 퇴사 이유로 높은 업무 강도와 업무량 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처우, 승진 적체 등이 지적되어 왔습니다. 올해는 연초부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가계부채 관리 등으로 업무량이 많았습니다. 지난 7월에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되면서 금감원이 가상자산거래소 등을 관리 감독하는 업무도 추가됐습니다.

이렇다 보니 금감원에서 야근은 당연한 일이 됐습니다. 자주 야근을 하다 보니 직원들의 수당 신청도 잦았고, 시간 외 수당 예산은 상반기에 바닥을 보였습니다. 이 때문에 금감원은 9월부터 수당 대신 휴가로 대체해 받을 것을 공지했습니다. 그러나 직원들은 “업무가 많아 단체로 야근까지 하는데, 어떻게 혼자서 휴가를 내고 쉴 수가 있겠냐”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결국 이복현 금감원장까지 나서 다음 달 마지막 2주간은 연차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라는 지시까지 나왔습니다.

금감원도 직원들의 고충을 알고 있고 인건비를 늘리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녹록지 않습니다. 금감원의 예산 권한은 금융위원회에 있습니다. 금감원은 일찍이 금감원의 인건비 예산을 추가 책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금융위는 “금감원이 예산을 느슨하게 관리해 온 탓”이라며 난색을 표했다고 합니다. 특히 인건비는 다른 예산보다 엄격히 통제받는 항목인 데다 시간 외 수당의 경우 금전이 아닌 휴가 등으로 보상할 수 있다는 법 조항이 있어 대체 가능하다는 설명도 나옵니다.

직원들은 당장 조직 개편이나 변화를 바라지 않으니, 거금을 들인 컨설팅 내용이라도 직접 공유받고 싶다고 입을 모읍니다. 현실적으로 당장 연봉 인상 체계를 손볼 수 없는 것은 직원들도 모두 알고 있으니 컨설팅 결과를 직접 듣고 재택근무 등 가능한 부분이라도 시도해 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금감원 기획조정국 관계자는 “컨설팅 결과는 실행을 위해 추가 검토 중에 있으며, 필요에 따라 과제별로 실행단계 등에서 공개할 예정이다”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