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시중은행 대출 창구 모습. /뉴스1

내년에도 가계대출 보릿고개가 이어질 전망이다. 금융 당국은 가계부채 증가세를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이내에서 보수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연내 가계대출 목표치를 맞추지 못한 은행엔 페널티가 부과돼 대출 공급이 줄어 금융 소비자가 체감하는 대출 문턱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포함한 내년도 경영 관리 계획을 지난주 금융 당국에 제출했다. 예년 사례에 비춰보면 금융 당국이 은행의 가계대출 관리 계획과 목표를 확인한 뒤 의견을 전달하고, 은행들과 조율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논의를 시작하는 단계로, 올해 말이나 내년 초가 돼야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를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가계대출 증가세를 명목 GDP 성장률 이내에서 관리하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라고 했다.

정부가 제시한 내년 명목 GDP 성장률 전망치는 4.5%다. 시중은행 대부분은 디딤돌대출 등 정책대출을 제외한 내년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2% 안팎으로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올해 목표치와 유사한 수준이다. 5대 금융지주가 밝힌 올해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정책대출 제외)는 1.5~2%였다.

금융 당국은 가계대출 관리 강화 기조를 내년에도 이어갈 계획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달 초 임원 회의에서 “내년에도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점진적으로 하향 안정화될 수 있도록 전 금융권 가계대출 관리계획을 면밀히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김병칠 금감원 부원장이 이례적으로 시중은행장들을 긴급 소집해 간담회를 열고 내년 가계대출 관련 경영계획을 엄격히 세워 달라고 당부했다. 은행장들은 내년 가계대출 관련 경영계획도 보수적으로 수립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가계대출 공급 규모는 올해보다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금융 당국은 연내 가계부채 규모를 줄여 목표치를 맞추지 못한 은행에 대해선 내년 계획 수립 시 평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목표치를 낮추게 하는 페널티를 부여하기로 했다. 올해 DSR 목표치가 30%였다면 내년에는 25%로 낮추도록 한다는 것이다. DSR이 축소되면 그만큼 해당 금융사는 대출 공급을 대폭 줄일 수밖에 없다.

대다수 시중은행은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초과한 상태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5대 은행 가운데 4곳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이미 은행이 자체적으로 수립한 연간 경영계획을 초과했다. 우리은행은 연초 경영계획 대비 가계대출 실적 비율이 376.5%로 4배 가까이 초과했다. 이어 신한(155.7%), KB국민(145.8%), 하나(131.7%), 농협(52.3%)은행 순이다.

은행들은 줄줄이 대출 금리를 올리고 신규 대출 취급을 중단하고 있지만, 다음 달까지 목표치를 맞추지 못한 은행이 상당수에 달할 전망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연간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맞추지 못한 은행이 아직 많다”며 “다음 달 한 달 내 가계대출 규모를 줄이면 가능하나 어려운 곳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금감원은 현재 일 단위와 주 단위로 가계대출 현황을 은행으로부터 제출받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가뜩이나 대출을 늘리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DSR 목표치까지 낮아질 경우 타격이 클 수 있다”며 “금리 인하기에는 예대금리차가 줄어들기 마련인데, 실적 방어를 위해선 남은 한 달 내 가계대출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