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현대해상, DB손해보험 사옥 전경. /각 사 제공

금융 당국이 이례적으로 보험사의 비례형 담보 판매 금지 조치를 내렸다. 비급여 관리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한 의료개혁에 대한 정부 의지가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민영보험이 과잉진료를 유발해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킨다는 문제의식이 사회 전반으로 번지면서, 보험업계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2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21일 오후 보험사 임원들을 소집해 회의를 열고 이들에게 비례형 담보 판매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비례형으로 설계된 3대(암·뇌·심장질환) 주요치료비와 순환계 치료지원금, 상해·질병 치료지원금 담보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비례형 담보는 과잉진료 우려가 큰 상품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현재는 판매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손해율이 낮지만, 시간이 지나 보험금 청구 건수가 많아지면 적자가 불가피한 상품이다. 일각에선 과잉진료로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는 실손보험과 비슷한 상품이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비례형 주요치료비는 1년 동안 발생한 치료비에 비례해 보험금을 지급한다. 지불한 치료비가 많을수록 받는 보험금도 늘어나는 구조다. 보험금은 1000만원씩 구간별로 지급된다. 치료비가 1000만~2000만원 사이면 보험금 1000만원을 받고, 2000만~3000만원 사이면 2000만원을 받는 식이다. 치료비가 900만원이라면 보험금을 받기 위해 불필요한 치료 100만원을 더 받으려는 한다는 게 문제다.

일각에선 금융 당국의 제동이 당연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보험료 할인·할증제도를 도입하고 자기부담금을 높인 실손보험조차 과잉진료를 막지 못해 개혁 대상에 올랐는데, 흥국화재·동양생명 등 일부 보험사가 ‘모든 치료’에 대한 급여·비급여를 연 최대 1억5000만원씩 10년 동안 15억원 보장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깃발. /뉴스1

다만 보험업계는 이번 결정이 통상적인 조치와는 결이 다르다고 보고 있다. 금감원은 그간 과당경쟁이 벌어질 때마다 보장 한도를 합리적으로 설정하라고 주문하는 수준으로 지도했는데, 상품 자체가 문제라며 판매 중단을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보험업계 안팎에선 정부가 비급여 관리와 실손보험 개혁을 중점으로 한 의료개혁에 대한 의지가 판매 중단이라는 특단의 조치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보건 당국도 올해 들어 보험사의 일부 상품이 건강보험 재정 악화의 주요 원인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험사가 파격적인 상품을 출시하면서, 부담 없이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의료이용이 늘어나면 건강보험 지출도 증가한다. 건강보험 적용이 불가한 비급여 치료를 받더라도 이 과정에서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처방약이나 검사를 추가로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건강보험 적자 규모는 올해 2조6000억원, 2026년 5조원, 2028년 8조9000억원으로 예상된다. 흐름대로라면 적립금은 2029년 소진된다.

보험사 상품이 가입자와 의료기관의 도덕적 해이 문제를 넘어 건강보험 재정 악화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보험업계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 결정에 대해 “소득상실분을 보장한다는 취지와 다르게 경증까지 보장하거나, 중증이라 하더라도 고액을 보장하는 등 받지 않아도 될 치료까지 받도록 만드는 모습을 고려한 것이다”라며 “올해 들어 (민영보험이) 건강보험 가입자에게 부담을 주게 만드는 게 옳은 것이냐는 지적이 크게 제기된 상황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