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책무구조도를 시범 운영 중인 18개 금융사에 책무구조도 수정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말 임원 인사 및 조직개편을 앞둔 금융사들은 책무구조도 수정만을 위한 이사회를 또 열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동안 금융권에서 이사회 의결 절차를 생략해 달라는 요구가 많았지만, 당국은 법에 규정된 내용이라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11월 중순 18개 금융사와 면담을 하고 지난 10월 말 제출한 책무구조도에 대해 수정 요청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범운영 중 발견된 미비점을 보완해 계획서를 다시 제출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구체적인 수정 내용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금융사들은 관련 이사회를 열 준비에 분주한 모습이다.
책무구조도를 수정하기 위해서는 이사회 승인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사회 심의와 의결 절차를 거쳐야 금융 당국에 책무구조도를 제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정뿐 아니라 임원이 맡은 책무·직무에 변동사항이 발생할 때마다 세부 내용을 새로 쓰고 다시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금융사 입장에서는 절차가 번거롭다.
연말 임원 인사를 앞두고 있는 금융사들은 책무구조도 수정을 위한 이사회 한 번, 인사 이후 책임 변동에 따른 이사회를 또 한 번 열어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지난 10월 말에 제출한 책무구조도 제출을 위한 이사회까지 합치면 관련 이사회만 3번이다. 책무구조도 수정을 위한 이사회와 임원 인사 및 조직개편을 위한 이사회의 시기가 비슷할 경우 한 번에 열 수도 있지만 시간이 맞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그동안 업계에서는 이사회 의결 절차가 워낙 복잡해 생략해 달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말이 먹히지 않는다”며 “당장 당국에서 요구한 수정사항을 정리하기도 시간이 촉박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연말연시 대규모 조직개편과 인사가 이뤄지는 시기에 책무구조도 수정 업무가 부담스러워질 수 있다는 건 이미 업계에서 예상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금감원도 제도가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직전인 12월 말에 책무구조도 제출이 몰릴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기제출 기한에 맞춰 10월 말에 제출한 금융사들은 예상보다 더 부담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연말 인사 이동 전에 다시 책무구조도를 수정하고 이사회까지 또 소집해야 한다. 최근 사외이사들이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어 안건을 이사회에 설명해야 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는 설명이다.
업계는 그동안 이사회 의결 절차 생략을 인센티브 형태로 건의해 왔지만, 당국은 법적으로 명시된 사항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시행령 등에 따르면 대표이사 등은 ▲책무를 배분받는 임원의 변경 ▲책무구조도에서 정하는 임원 직책의 변경 ▲책무구조도에서 정하는 임원 책무의 변경 또는 추가의 경우 책무구조도를 변경(이사회 의결 필요)해 금융 당국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임원을 바꿀 때마다 책무 배분을 신중하게 하고, 이를 이사회에서 살펴보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사회의 견제와 감시 기능을 더 활성화할 수 있다고 본다”며 “이제 막 제도가 시작한 상황이라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정착이 되면 익숙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