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가상자산 과세를 유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가상자산업계와 학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가상자산 투자소득에 세금을 거둬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공감하지만, 법·제도·인프라가 미비한 상태에서 성급히 추진했다간 혼란만 초래한다는 것이다.
21일 가상자산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가상자산 투자소득세에 대한 기본공제 한도를 5000만원으로 한 소득세법 개정안을 추진해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토록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민주당 주장대로 개정안이 시행되면 가상자산 투자로 1억원의 수익을 낸 경우 5000만원을 제한 금액에 세율 20%를 적용한 1000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지방세 2%(100만원)까지 합하면 세금은 1100만원으로 늘어난다.
가상자산업계는 가상자산 과세 계획이 발표됐던 지난 2020년부터 반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가상자산이 과세 대상이 된다는 것은 정부가 가상자산을 산업군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라 오히려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구체적인 논의는 뒷전으로 밀린 채 과세 여부는 매번 ‘정치적 카드’로 활용됐다. 그때마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들은 볼멘소리를 내왔다.
가상자산업계는 법·제도 보완은 물론 과세 인프라를 갖추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정확한 과세를 하려면 투자자의 거래내역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현재로선 모든 내역을 확보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국내 거래소는 이용자들의 거래 내역을 의무적으로 금융위원회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이용자의 해외 거래소 거래내역은 알 수 없다. 해외 거래소에서 코인을 매수해 개인지갑으로 옮긴 뒤 국내 거래소에서 매도하거나 반대의 경우에는 해외 각국의 거래소로부터 관련 자료를 받아야 해 파악하기가 힘들다. 가상자산 전송 시 사업자 간 송수신자 정보를 공유하도록 한 ‘트래블 룰’이 있지만, 시행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아 통일된 데이터 양식이 없다는 게 문제다.
이밖에 코인을 채굴해 매도할 때도 과세 대상이 되는지, 거래소마다 코인의 가격이 제각각인 상황에서 코인의 취득원가를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대체불가토큰(NFT)이나 유틸리티토큰 등 다른 특징을 가진 가상자산에 대한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
한 국내 거래소 관계자는 “거래소마다 코인의 가격이 다르기 때문에 고액 투자자는 가격을 제대로 산정하라고 요구하는 등 불협화음이 있을 수 있다”라며 “과세 당국이 투자자의 해외 거래내역까지 모두 확보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법·제도가 촘촘히 만들어진 이후 과세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학계도 과세 논란이 불거졌을 때부터 이런 우려를 제기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위원은 2021년 발표한 ‘디지털자산 과세체계 현황 및 합리적 발전방향’ 보고서에서 “가상자산이 지불토큰, 유틸리티토큰, 증권토큰 등으로 세분화되는 추세를 고려할 때 현행 소득세제는 디지털자산 시장의 현황·특성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개인 투자자들도 민주당 계획을 반대하고 있다. 지난 19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등록된 ‘2025년 1월 1일 코인(가상자산) 과세 유예 요청에 관한 청원’은 이날 오전 9시 기준 5만6309명이 동의했다. 청원인은 “금융투자소득세와 가상자산 과세 유예는 하나의 세트다”라며 “둘은 같은 투자인데도 한쪽은 폐지, 한쪽은 과세한다는 것은 형평성 문제가 생긴다”라고 지적했다.
한국블록체인학회의 명예회장인 박수용 서강대 교수는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이 나오면서 체계를 갖춰가고 있다”라면서도 “해외거래소를 이용할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이 불분명해 제도적 측면에서 과세를 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본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