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은행권 예적금 금리 인하로 장기 금융상품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단기 금융상품은 제자리걸음 수준이지만 조금씩 증가하는 반면 만기가 2년 이상인 장기 금융상품은 지난 6개월간 하락폭이 컸다.
20일 한국은행의 ‘2024년 9월 통화 및 유동성’ 자료에 따르면 2년 이상 장기 금융상품의 잔액은 583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7월 500조원대로 내려온 이후 3개월째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중이다. 올해 1월 잔액은 653조5000억원 수준이었는데, 3월부터 내리막길을 걸은 이후 6개월간 꾸준히 하락한 것이다.
지난 3월 기준 잔액은 전월 대비 3.4% 하락해 지난해 8월 이후 처음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후 꾸준히 하락하다 지난 7월엔 -3.5%를 기록하며 올해 들어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했다. 8월도 3.3% 줄었다. 9월은 전체 정기예적금 잔액이 8조6000억원 증가하며 2년 이상 장기 금융상품 역시 2.3% 증가했는데, 한은은 “4분기 중 대규모 정기예금 만기 도래에 따른 은행들의 선제적 예금 유치 노력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단기 투자상품인 2년 미만 정기예적금 잔액은 소폭이지만 꾸준히 상승해 왔다. 잔액은 2년 이상 장기 금융상품보다 훨씬 많은데, 올해 1월 1651조4000억원에서 지난 9월 1741조4000억원까지 증가했다.
장기 금융상품에 대한 인기가 줄어든 것은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단기 상품으로의 자산 이동이 빨라졌기 때문이다. 예금은 안정적이지만 수익이 낮은데, 최근 고수익 기대가 가능한 상품에 대한 선호가 뚜렷해진 탓이다. 단기 예적금뿐 아니라 최근 가상자산 시장 등에 자산이 몰리면서 투자 패러다임이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은행권이 대거 수신금리 인하에 나서면서 예적금 상품 금리를 낮추고 있어 장기 투자상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인하한 이후 은행권은 수신금리를 차례로 낮춰오고 있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이 모두 예적금 금리를 최대 0.55%포인트까지 인하했다.
실제로 은행 예금에서는 돈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14일 기준 요구불예금 잔액은 총 587조6455억원으로 지난달 31일(597조7543억원)보다 1.7% 줄었다. 예금 잔액이 불과 10영업일 만에 10조원 넘게 급감한 것은 그만큼 은행 예금주들이 적극적으로 돈을 인출했다는 얘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화폐 가치가 최근 많이 떨어지면서 고객들이 고수익 투자상품에 대한 두려움이 예전보다 없어진 경향이 있다”며 “장기보다 단기 상품에 관심이 많다는 것은 만기 후 다른 상품에 투자하기 위해 잠시 굴리는 용도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