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짠테크족’인 직장인 최모(33)씨는 최근 연 최고금리 10%를 제공한다는 적금 홍보 글을 보고 해당 은행에 신규 고객으로 가입했다. 해당 상품은 기본금리 4%에 추가로 6%포인트 금리를 더 받으려면 쿠폰을 발급받아야 하는데, 최씨는 쿠폰 발급 방법을 찾느라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마저도 선착순으로 쿠폰 발급이 마감돼 결국 가입을 포기했다.
최씨는 “한 달 최고 납입금액이 20만원밖에 안 돼 1년 해야 고작 10만원 정도 이자를 받는 건데, 이마저도 우대금리 조건이 까다로워 이런 고금리 상품들의 우대금리를 모두 받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며 “친구끼리는 이런 고금리 적금을 찾아다니는 재테크를 ‘이자 폐지줍기’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잘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하가 본격화하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고금리 예·적금 상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연 8%~10% 수준에 해당하는 이자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광고하는 금리를 받기 위해서는 우대조건이 매우 까다롭고 월 최고 납입 액수도 적다. 금융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과대광고가 아니냐’며 허탈해하는 분위기도 나오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최고 연 8% 금리의 ‘KB스타적금Ⅱ’를 판매 중이다. 가입 기간은 12개월로 매월 30만원까지 납입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금리는 연 2.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우대금리로만 6.0%포인트를 제공하는 셈이다.
우대금리를 받기 위해서는 신규 또는 미사용 고객에 한해서만 가능하고, 매월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최고 납입액에 최고 금리를 적용해 받을 수 있는 이자는 세후 13만1980원 정도 수준이다.
신한은행의 ‘쓸수록 모이는 소비적금’은 소비자가 카카오페이로 소비할 때마다 일정 금액이 적금계좌에 자동으로 저축되는 상품이다. 최고금리 연 6% 적용으로 월 50만원까지 저축이 가능하다. 하지만 기본금리가 1.8%로 매우 낮다. 심지어 6개월 만기 상품으로 우대금리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사실상 받을 수 있는 이자는 세금을 제하고 4만4415원 수준이다.
iM뱅크의 연 8.5% 금리의 ‘팔로!(Follow) iM뱅크, 8.5%! 더쿠폰적금’은 iM뱅크 애플리케이션(앱)을 처음 사용한다면 조건 없이 8.5% 금리 제공한다. 하지만 최고 납입액이 20만원밖에 되지 않는다. 기간도 12개월로 짧은 수준이다. 케이뱅크 역시 연 7.5% 금리를 자랑하는 ‘궁금한 적금’을 출시했지만 최대 하루 5만원까지 납입할 수 있는 한 달 만기 적금이다. 기본금리는 1.5%밖에 되지 않는다. 최고금리 7.5%를 적용했을 때 원금 155만원에 이자는 5096원으로, 세후 4000원대 이자를 받을 수 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시중은행의 수신금리가 하향 조정되면서 이런 고금리 상품이 ‘미끼상품’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광고에 비해 받는 이자수익이 매우 적거나 조건이 까다로워 은행이 소비자들을 우롱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온라인 상에서는 ‘이자 폐지줍기’라는 비웃음 섞인 농담도 나온다. 이는 ‘짠테크(짠돌이+재테크)’의 일종인 ‘디지털 폐지줍기’에 빗댄 용어다. 온라인상에서는 걷는 만큼 일정 금액을 지급받는 등 앱 등을 이용해 소액을 모아 자산을 불리는 재테크를 ‘디지털 폐지줍기’라고 일컫는다.
전문가들은 고금리 상품이라고 하더라도 우대금리 조건 등이 까다로운 마케팅 상품이 많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사실 광고는 가장 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부분만 강조하기 때문에 세세한 내용은 소비자가 직접 확인해야만 한다”면서도 “은행 역시 광고를 과장하지 않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