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KB국민은행의 인도네시아 자회사 ‘KB뱅크(옛 부코핀은행)’의 투자·운영 부실 논란으로 국내 은행의 해외 진출 규제 문턱을 다시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금융 당국의 ‘감시망 부재’로 국민은행의 부실 해외 금융사 인수를 막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국민은행은 부코핀은행 지분을 인수하기 시작한 후 현재까지 3조1000억원가량을 수혈했지만, 올해 6월 말까지 1조5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 상태다.

7일 금융감독원이 발간한 ‘금융감독연구(은행권 해외 진출 규제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자료에 따르면 국민은행이 부코핀은행 지분을 처음 인수했던 2018년 말 부실채권(NPL) 비율은 6.67%로, 당시 인도네시아 상업은행 평균(2.3%)보다 높았다. 은행의 총대출 중 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미 상당했다는 의미다.

앞서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국내 은행이 현지 은행을 인수했던 때 NPL 비율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2013년 하나은행이 인수한 현지 은행의 NPL 비율은 0.09%였으며,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각각 1.36%, 2.51%였다.

문제는 국민은행이 부실 은행을 사들였음에도, 이를 관리·감독해야 하는 금융 당국은 제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8년 5월 은행이 해외에 진출할 때 적용하던 사전 보고 규제를 완화한 탓에, 투자가 이뤄지기 전 금융 당국의 사전 점검이 상세히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은행법 시행령 개정 전에는 은행이 진출하는 국가의 신용평가등급이 낮거나 인수하려는 금융사의 건전성이 양호하지 않을 경우 의무적으로 사전 신고를 해야 했다. 현재는 투자 규모가 자기자본의 1%를 초과할 때만 사전 신고하면 된다.

또 현재의 감독 수준에선 KB뱅크처럼 부실이 나날이 커져도 금융 당국이 이를 신속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금감원은 은행으로부터 해외점포에 대한 업무보고서를 보고 받고 있으나 주기가 반기(6개월)로 긴 편이고, 의무 보고 항목에 NPL 비율 등 건전성 지표 추이는 빠져 있다. 성무현 금감원 선임조사역은 이 자료에서 “은행이 인수하려는 해외 현지 은행의 NPL 비율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더라도 감독 당국이 이를 저지할 법적 수단이 마땅치 않다”며 “또 현지 은행을 인수한 후 운영 과정에서 NPL 비율이 악화할 경우에도 감독 당국이 이를 신속하게 확인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인도네시아 KB뱅크 전경./KB국민은행 제공

금융 당국이 해외 진출 규제를 완화해 온 것은 은행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규제 부담을 덜고 빠른 해외 진출이 가능하도록 해 이자 이익에 치중된 수익을 다변화하는 것이다. 금융 당국은 지난해엔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해 은행의 해외 비금융 자회사 소유를 허용하고, 해외 자회사에 대한 자금 지원 규제를 완화했다. 또 신고·보고 의무를 일부 면제하고, 건전성과 내부통제 중심으로 검사와 제재를 축소했다.

그러나 KB뱅크 손실 사태를 계기로 규제 완화가 자칫 감독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금융 당국의 보다 엄격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성무현 선임조사역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를 예로 들며 “미국이 2018년 이후 자산 규모가 2500억원달러 미만인 은행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면서 당국이 적절히 감시·감독을 수행하지 못했다”라며 해외 진출 규제를 투자액이 아닌 여러 자본 비율 평가를 기준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금감원은 지난 8월 중순부터 두 달 넘게 KB금융·국민은행에 대해 정기 검사를 진행했다. 금감원은 검사에서 KB뱅크의 운영 실태를 집중 점검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KB뱅크의) 운영 리스크 관리에 안일함이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