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병원 진료실. /연합뉴스

실손보험 가입자의 입원·통원일당 한도가 미가입자의 70% 이내로 설정된다. 실손보험이 없는 고객이 받을 수 있는 입원·통원일당이 최대 100만원이라면, 실손보험 가입자는 최대 70만원으로 제한되는 것이다. 실손보험이 입원·통원을 보장하기 때문에 다른 상품에서 중복보상을 받아 차익을 남기를 사례를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실손보험 가입자가 4000만명에 육박하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입원·통원일당 한도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보험개혁회의를 통해 마련한 ‘보험상품의 보장금액 한도 산정 가이드라인’을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 금감원은 가이드라인 시행에 앞서 내용을 각 보험사에 행정지도할 예정이다.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고객이 실제 지출한 의료비용보다 과도하게 많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합리적인 한도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덕적 해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받은 담보의 한도가 축소되고, 갑작스레 한도를 높여 단기간에만 판매한 뒤 철수하는 절판 마케팅도 줄어들 전망이다.

가이드라인 적용대상은 입원·통원·간병일수에 따라 보장금액을 지급하는 담보, 경증상해·질병에 대한 수술·후유장해·치료 담보, 실손의료비 외 실제 손해를 보장하는 담보, 도덕적 해이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담보 등이다. 단체보험과 자동차보험은 제외됐다.

보험사는 앞으로 이 담보의 한도를 설정할 때 실제 지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의료비를 반영해야 한다. 1일 입원·통원·간병인 이용 시 실제 본인부담액 수준에서 한도를 산정해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뜻이다. 후유장해 담보는 미래 소득보장금액 등을 고려해 한도를 차등화하고, 수술·진단담보도 통상적인 비용을 고려해 산정해야 한다. 위로금 성격의 비용은 고려할 수 없다는 것이 원칙이다.

특히 금융 당국은 입원·간병 담보에 한해선 소득상실비용과 교통비 등 질병·상해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비용은 한도에 포함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그동안 보험사는 환자들이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해 치료를 받는 사례를 고려해 교통비와 식비 등 부대비용까지 고려해 한도를 설정했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뉴스1

보험사가 담보 가입 여부를 심사할 때 고객이 다른 보험사에서 동일 담보에 가입했는지를 확인해 한도를 초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조항도 가이드라인에 포함됐다. 이에 따라 동일한 담보나 상품에 여러 개 가입하는 중복가입도 더 까다로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이드라인은 보험사의 과당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최근 보험업계는 새로운 회계제도(IFRS17) 도입 등의 영향으로 보험금 한도를 상향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 운전자보험의 변호사선임비용 한도를 기존 1000만원에서 1억원까지 높이고, 단기납 종신보험의 해지환급률을 130%까지 끌어올린 게 대표적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실손보험 덕분에 소비자의 의료비 부담은 30% 수준인데, 일부 상품은 30% 이상을 보상해 문제가 된다고 봤다”라며 “가이드라인의 취지가 한도를 합리적으로 설정하고 이를 바꾸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 과열경쟁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