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서희

4대 은행이 올해 들어 3분기까지 3조8000억원가량의 부실 대출채권을 털어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와 비교해 50% 가까이 늘어났다. 경기 침체와 고금리 장기화로 빌린 돈을 제때 갚지 못한 가계와 기업이 크게 증가한 탓이다. 특히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를 중심으로 기업대출 부실 ‘경고음’이 커지고 있어 은행권의 건전성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은 올해 1~3분기 중 3조7853억원의 부실채권을 상·매각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2조5606억원) 대비 47.8% 증가했다.

은행들은 자산건전성 관리를 위해 3개월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을 ‘고정이하여신’으로 분류한다. 이후 회수가 어렵다고 판단하면 ‘떼인 돈’으로 간주해 장부에서 지우거나(상각), 자산유동화전문회사 등에 헐값에 파는(매각) 조치를 한다. 은행이 부실 채권을 처분하면 이 채권은 보유 자산에서 제외돼 연체율과 고정이하여신비율 등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기업 부실채권 상·매각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4대 은행이 3분기까지 상·매각한 기업 부실채권은 2조8169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7085억원) 대비 64.9% 급증했다. 같은 기간 가계 부실채권 상·매각 규모는 8524억원에서 9684억원으로 13.6% 늘었다.

가계대출에 비해 기업대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며, 부실채권도 함께 늘어난 영향이다. 은행들은 금융 당국의 가계부채 억제 기조에 가계대출 확대가 어려워지자, 지난해부터 기업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렸다. NH농협은행을 포함한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기업대출 잔액은 825조188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5% 증가했다. 이는 가계대출 증가율(5.6%)을 웃도는 수준이다. 기업대출의 증가는 부실채권의 급증으로 이어졌다. 수년째 이어진 고물가와 고금리에 내수부진까지 겹치면서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이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중소기업, 개인사업자 연체율 상승세가 가파르다. 올해 3분기 말 4대 은행의 중소기업대출(개인사업자대출 포함) 평균 연체율은 0.43%로 전년 동기(0.35%) 대비 0.08%포인트 급등했다.

그래픽=손민균

문제는 은행들이 공격적으로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부실채권이 쌓이고 있다는 점이다. 4대 은행의 3분기 말 기준 기업대출 중 고정이하여신 규모는 3조15억원으로, 지난해 3분기 말(2조3208억원)보다 29.3% 불어났다. 올해에만 3조원가량을 털었음에도 남은 부실채권이 3조원 규모라는 얘기다. 가계대출 중 고정이하여신 규모는 1조1145억원으로 같은 기간 10% 늘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대출 총량이 가계대출에 비해 많기 때문에 부실채권 규모도 더 클 수밖에 없다”며 “다만 기업 부실채권 증가 속도가 빨라졌다는 점에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