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달리3

은행권이 내부통제 책무구조도 시범 운영 참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사고의 책임을 명확히 해 이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책무구조도 시범 운영 신청 기한이 이달 말까지이기 때문이다.

책무구조도는 금융회사에서 내부통제 부실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금융사 임원들의 구체적 책무와 내부통제 책임 영역을 사전에 지정한 문서다. 이를 통해 횡령 등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역할을 한다. 최고경영자(CEO) 등 임원의 징계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이른바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이라고도 불린다. 금융 당국은 책무구조도를 통해 꼬리자르기식 책임 회피를 방지하고 내부통제 부실을 미리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지주 이사회는 지난 24일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른 책무구조도를 의결했으며 다음 주 중 금융 당국에 제출할 예정이다. KB국민은행도 KB책무관리실을 신설하고 책무구조도를 이달 말까지 제출해 시범 운영에 참여하기로 했다. 우리금융도 지난 18일 열린 이사회에서 책무구조도를 의결했으며 이주 내 책무구조도를 제출할 계획이다.

은행권에서 책무구조도를 가장 먼저 제출한 곳은 신한은행이다. 신한은행은 지난 9월 책무구조도를 당국에 제출했다. 지난해 초부터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해 책무구조도를 준비하면서 영업점 부서장들의 효과적인 관리를 위해 내부통제 매뉴얼과 점검시스템도 구축했다. 이후 DGB금융지주와 iM뱅크도 지난 21일 책무구조도를 금융 당국에 동시에 제출했다.

그래픽=손민균

하나은행은 지난 25일 책무구조도를 금융 당국에 제출하고 책무구조도 시범 운영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6월 TF를 구성해 책무구조도 작업을 시작했다. 이후 내부통제 관리 의무를 부여받는 임원과 관련 본부 부서장을 대상으로 책무구조도 설명회를 진행으로 관리 체계가 조기에 도입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하나은행은 책무구조도를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책무구조도 관리 시스템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금융 당국은 지난 7월 책무구조도 도입 등을 담은 지배구조법을 시행하면서 조기 안착을 위해 11월 초부터 내년 1월 초까지 시범 운영을 하겠다고 밝혔다. 시범 운영 기간에 책무구조도를 제출 및 시행하면 컨설팅 및 제재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방침이다. 은행과 금융지주는 늦어도 내년 1월 2일까지, 금투업·보험업(자산총액 5조원 이상)·저축은행(자산총액 7000억원 이상)은 내년 7월 2일까지 책무구조도를 제출해야 한다.

금융 당국이 이런 조치를 하게 된 것은 최근 금융사고가 잇달아 일어났기 때문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내 금융권 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올해 8월까지 발생한 금융사고는 총 463건, 규모는 6616억원으로 집계됐다. 업권별로는 은행 금융사고가 4097억원(264건)으로 규모가 가장 컸다. 은행 중에서는 우리은행이 1421억원(30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국민은행 683억원(36건), 경남은행 601억원(6건)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다만 업계에서는 책무구조도를 두고 의견이 여전히 분분하다. 내부통제 관리에 대한 책임 소재가 보다 명확해지는 만큼 금융사고 예방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경영진 등에게 과한 책임이 부여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이 때문에 책임구조도 도입으로 영업 동력이 다소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책무구조도가 사전 예방보다 사후 제재에 그치면 금융사고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의구심도 남아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현재 일부 금융지주와 은행이 시범은행 참여를 결정하면서 5대 금융지주 및 은행이 모두 두 달간 진행될 시범운영에 참여할 예정인 것으로 안다”며 “제출 기한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최근 공개된 해설서를 기반으로 충분한 검토를 거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