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상자산 시장이 눈에 띄게 반등했지만, 국내 게임사들이 발행하는 코인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하락하고 있다. 게임 시장의 불황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P2E(Play to Earn·게임을 하면서 수익을 얻는 것) 게임에 대한 규제도 지속돼 투자자들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글로벌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요 코인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3일 오후 3시 기준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 빗썸에서 위믹스는 전날보다 0.1% 하락한 1076원에 거래되고 있다. 위믹스는 국내 게임 제작사인 위메이드가 자체 발행하는 가상자산으로 가장 대표적인 게임 관련 코인으로 꼽힌다. 지난달 1200원대에 거래됐던 위믹스는 최근 약세가 이어지며 이달 들어 10% 넘게 하락했다.
다른 게임 관련 코인도 비슷한 상황이다. 넷마블이 발행하는 마브렉스는 지난달 말 560원대에 거래된 후 현재는 약 10% 하락한 510원대에서 횡보하고 있다. 컴투스가 발행하는 엑스플라 역시 이달 들어 120원대에서 제자리걸음 중이다. 카카오게임즈와 연계된 보라 코인은 지난 5일 하루 만에 가격이 30% 가까이 급등한 155원을 기록한 후 현재는 127원으로 떨어졌다.
반면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가상자산 가격은 지난달부터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초 7300만원대를 기록했던 비트코인은 23일 현재 9240만원대로 올라섰다. 같은 기간 이더리움도 320만원에서 360만원대로 상승했다. 이더리움의 ‘라이벌 코인’으로 꼽히는 솔라나는 1개월 반 만에 가격이 약 30% 급등했다.
가상자산 시장은 지난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낮추는 ‘빅컷’을 단행하면서 투자심리가 살아났다. 여기에 오는 11월 5일 치러지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친(親)가상자산 기조를 강조해 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반등하면서, 최근 주요 가상자산 가격은 더 큰 폭으로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시장 상황을 두고 지난 상승장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고 분석한다. 과거에는 비트코인 가격이 크게 오를 때 다른 가상자산들이 함께 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국내에서 발행된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자산) 역시 투자가 몰리며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글로벌 시장에서 거래되거나 시가총액 규모가 크고 기능이 검증된 가상자산들이 선별적으로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지난 7월 가상자산보호법 시행 이후 국내에서 ‘묻지마 투자’는 많이 줄어든 상태다”라며 “미국에서 상장지수펀드(ETF)로 발행돼 기관 수요가 뒷받침된 비트코인, 이더리움이나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은 레이어1 계열 코인, 일부 밈코인 위주로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게임 관련 코인이 상승장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은 국내 게임업계의 불황이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게임사들이 실적 개선에 어려움을 겪고 성장성이 불투명해지면서, 이들이 발행하는 코인 역시 투자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위메이드의 경우 올해 상반기에 61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른바 ‘위믹스의 아버지’로 꼽히며 위메이드의 블록체인 사업을 총괄했던 장현국 전 대표가 지난 3월 회사를 떠난 후 실적을 반등시킬 만한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코인을 발행하는 게임사들이 요구해 온 P2E 게임 규제 완화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게임 산업의 성장을 위해 P2E 게임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지난해 5월 김남국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코인 대량 보유·매매 파문이 불거진 후 없던 일이 됐다.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022년 만들었던 ‘P2E 게임 태스크포스(TF)’는 최근 1년 6개월간 단 한 차례도 회의를 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게임사들은 국내에서 규제 개선 가능성이 줄어들자, 지금껏 진행해 온 블록체인 생태계를 되살리기 위한 해결책을 찾는데 고심하고 있다. 위메이드는 비트코인처럼 위믹스에도 ‘반감기’를 도입해 발행량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위믹스는 발표 직후 며칠간 반등했지만, 이후 줄곧 다시 내림세를 보였다. 컴투스와 넷마블 등은 최근 정부 차원에서 가상자산 산업을 육성 중인 일본으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아직 눈에 띄는 성과는 없는 상태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최근 시장에서는 인공지능(AI)이나 실물자산(RWA) 등의 테마가 주목을 받고 있지만, 게임은 과거에 비해 관심이 많이 줄었다”면서 “당분간 게임 관련 코인의 약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