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저축은행 업계 빅3에 오르며 선진 호주 금융의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했던 페퍼저축은행이 업계 7위(자산 기준)로 내려앉았다. 지난해 3분기 애큐온저축은행에 5위로 자리를 내주더니 올 상반기 다올저축은행에도 밀리면서 1년새 두 계단이나 미끄러졌다.
지난해 업황 악화에 개인대출 영업을 중단하는 등 덩치 줄이기에 나서면서 빠른 속도로 쪼그라들었다. 공격적인 영업에 힘입어 규모를 키워온 페퍼저축은행이 성장에만 몰두하다 결국 리스크 관리에 실패했다는 평가다.
일단 모기업인 호주의 글로벌 금융사 페퍼그룹이 급한 불을 껐다. 지난 2019년 450억원에 이어 지난해 5월 200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하더니 올해 3월 100억원, 지난 8일 100억원 등 두 차례에 걸쳐 200억원을 추가 투입했다. 이번 자본확충으로 대출 영업과 함께 수신 영업 등도 정상 궤도에 올라설지 관심이 쏠린다.
11일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페퍼저축은행은 올 상반기 64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429억원 적자에서 그 폭이 확대됐다. 부실채권에 대비한 충당금이 늘어나면서 수익성이 악화했다. 지난해 7월 중단한 개인신용대출을 2분기 재개했지만 대출 자산 확대와 이에 따른 예대마진 증가 등이 수익 개선에 영향을 미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건전성 관리가 최우선 과제다. 올해 6월 말 기준 연체율은 13.07%로 전년 6.05% 대비 두 배 이상 올랐다. 부실자산 비율을 뜻하는 고정이하여신비율은 19.15%로 20%에 육박했다. 전년 동기 7.33%였던 것과 비교하면 1년 새 3배 가량 급증한 셈이다.
페퍼저축은행의 경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과 함께 개인신용대출 부실 등 이중고를 겪고 있다. 지난 2020년부터 2022년 사이 비대면 중금리 상품 라인업을 개편하면서 개인신용대출을 큰 폭으로 늘린 탓이다. 중금리 대출은 신용 하위 50%인 차주에게 일정 수준 이하의 금리로 공급하는 신용대출이다. 이들 가운데 다중채무자가 많은 만큼 연체 가능성도 높을 수밖에 없다.
페퍼저축은행은 개인신용대출을 중단하면서 개인대출 비중을 1년간 4%포인트 가까이 낮췄지만 그 사이 연체율이 뛰었다. 부실 차주는 더 늘어났단 뜻이다. 고객신용·위험관리에 난맥상을 드러낸 대목이다.
부동산 PF 대출의 경우, 비중은 크지 않지만 연체율이 문제다. 지난 6월말 기준 페퍼저축은행의 총 여신 2조8331억원 가운데 부동산PF대출은 1590억원 수준에 그친다. 건설업(1465억원)과 부동산업(2276억원)에 실행된 대출을 모두 합한 대출금액은 5331억원 규모다. 다만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이 28.24%로 30%에 육박한다. 대출 가운데 정상으로 분류되는 여신은 328억원 뿐이다.
최근엔 신용등급 취소 요청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페퍼저축은행은 신용등급이 BBB-(부정적)에서 BB(투기)로 떨어지기 전에 나이스신용평가사에 신용등급 취소를 요청하고 퇴직연금 시장에서 철수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투기등급으로 떨어질 경우 페퍼저축은행의 실적 개선은 물론 이미지 회복 등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감안해 신용등급 취소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자산 규모를 축소하고 보수적인 영업을 하는 상황에서 굳이 퇴직연금 상품을 운영할 필요성을 못 느꼈을 것이란 해석이다.
페퍼저축은행 관계자는 “보수적인 영업 기조로 인해 수신 규모를 확대할 필요성이 줄어든 데다 퇴직연금의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판단하에 지속적으로 퇴직연금 비중을 축소해 왔다”며 “수신전략 변경을 위해 퇴직연금 정기예금 취급을 중단하고 창구 및 비대면 채널에 집중하기로 결정한데 따른 사안”이라고 밝혔다.
페퍼저축은행은 올 연말까지 건전성 관리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상반기까지 매각한 부실채권은 670억원 수준이다.
페퍼저축은행 관계자는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 침체라는 대외 여건이 실적에 영향을 미쳤고 특히 개인사업자 주담대 충당금 적립의 영향이 컸다”면서 “최근 대출 영업을 재개했고 적극적으로 부실채권을 매각하고 있어 손실 폭이 줄어들고 있기에 향후 점진적인 실적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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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조선 한재희 기자 onej@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