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거리에 붙은 대출 광고물. /연합뉴스

5대 시중은행이 서민의 ‘금융 징검다리’로 불리는 정책 금융상품 햇살론뱅크 공급을 매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햇살론뱅크 출시 후 이듬해 총 200억원을 공급했으나 올해 들어 8월까지 15억원을 지원한 데 그쳤다. 은행권 전체 공급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1%에 불과하다. 중·저신용자의 대출 문턱은 점점 높아지는데 주요 은행이 서민금융 지원에 뒷짐을 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실이 금융위원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은행권이 올해 들어 8월까지 공급한 햇살론뱅크는 총 7317억원이다. 이중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공급액은 14억원으로, 비중은 0.1%다. 2022년과 지난해 연간 5대 은행의 햇살론뱅크 공급액은 각각 200억원(비중 1.6%), 123억원(0.9%)이었다. 올해 집계된 공급액이 8개월 치라는 점을 고려해도 공급액이 1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햇살론뱅크는 정책 금융상품을 6개월 이상 성실 상환하고 신용이 개선된 대출자가 최대 2500만원을 추가로 대출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저축은행 등 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는 ‘햇살론’과 달리, 햇살론뱅크는 1금융권에서 받을 수 있다. 저소득·저신용자가 은행권에 안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징검다리 성격을 갖고 있다.

주요 은행이 햇살론뱅크 공급에 소극적인 것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대출자 대부분이 저신용·저소득자라 연체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데다, 은행이 대출금의 10%를 보증하는 구조상 손실을 볼 여지가 크다”며 “적극적으로 상품을 취급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햇살론뱅크의 연체율은 높은 수준이다. 햇살론뱅크를 통해 돈을 빌린 후 제때 갚지 못해 정부와 금융사가 대신 갚아준 대위변제액은 올해 8월 말 기준 2453억원으로, 대위변제율은 14.6%다. 1000만원을 빌려줬을 때 146만원은 돌려받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래픽=손민균

햇살론뱅크는 고객 유치가 시급한 지방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의 몫이 됐다. 부산·경남·전북·광주·제주은행 및 iM뱅크(옛 대구은행) 등 6개 지방은행이 2022년 공급한 햇살론뱅크는 약 1조2144억원이다. 이는 은행권 전체 공급액의 98%다. 지난해 공급액은 1조959억원(82.2%)이었다. 올해는 지난해 8월 햇살론뱅크 공급을 개시한 토스뱅크가 전체 공급액의 60% 이상을 소화하고 있다. 토스뱅크가 올해 8월까지 공급한 햇살론뱅크는 4600억원으로, 지방은행 공급액(2674억원)의 1.7배 수준이다.

지방은행과 인터넷은행은 햇살론뱅크의 대출금리를 높게 책정해 손실을 일정 부분 메우고 있다. 지방은행 중 햇살론뱅크를 가장 많이 취급하는 전북은행이 받는 평균 금리는 연 9.7%로 은행권에서 가장 높다. 평균 금리가 가장 낮은 곳은 하나은행으로 연 5.6%다. 두 은행 간 금리 격차는 4.1%포인트로 높은 수준이다.

이자 장사로 매년 수조원을 벌어들이는 5대 은행이 서민금융 지원에 인색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이 가계부채 관리 명목으로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신용점수가 낮은 취약계층부터 대출 창구에서 밀려나고 있는데, 은행이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서민금융 공급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