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9일 서울시내 저축은행. /연합뉴스

저축은행 고객 중 5개 이상의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의 비중이 4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여러 금융기관의 채무를 가지고 있는 다중채무자의 부실 위험이 커지면서 저축은행의 건전성에 비상등이 켜졌다.

25일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14개 저축은행에서 5개 이상의 금융회사를 이용하는 다중채무자 비중은 42.4%로 집계됐다. 다중채무자의 기준을 3개 이상의 금융회사를 이용하는 채무자로 넓히면 저축은행 고객의 다중채무자 비중은 75%를 넘어선다. 다중채무자는 통상 여러 곳에서 돈을 빌려 대출 채권이 부실화될 위험성 큰 채무자로 분류된다. 빚을 돌려막기 위해 여러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렸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고금리 기조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다중채무자의 부실 위험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다중채무자의 평균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지난해 3분기 말 1.5%로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다중채무자 비중이 높은 저축은행 역시 건전성 리스크가 덩달아 커지고 있다.

금융 당국도 다중채무자의 부실에 대비해 저축은행 건전성 관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달 말부터 다중채무자에 대한 대손충당금 적립을 늘려가기로 했다. 이달 말부터 5~6개 금융회사 대출 이용의 경우 2025년 6월까지 충당금 적립을 10%, 7개 이상은 15%로 늘린다. 이어 ▲2025년 12월까지 5~6개 금융회사 대출 이용은 20%, 7개 이상은 30%로 ▲2026년 1월 이후에는 각각 30%, 50%로 올린다. 대손충당금은 금융기관이 부실 발생 가능성이 있는 대출채권에 대비해 수익의 일부를 쌓아두는 것이다.

일러스트=손민균

금융 당국은 이번 달부터 저축은행의 다중채무자에 대한 충당금을 최대 50% 늘려 적립하기로 했으나, 서민금융 공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에 충당금 적립 수준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저축은행이 충당금을 추가 적립해야 하는 다중채무자에 대한 대출을 닫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정상화에 따른 저축은행의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는 점도 다중채무자에 대한 충당금 적립 요건 강화를 단계적으로 하기로 결정한 이유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의 충당금 적립 부담은 크게 낮아졌다. 금융위원회는 다중채무자 충당금 적립 요건 강화에 따라 1500억원가량의 대손충당금 적립액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나이스신평의 분석 결과 약 465억원의 추가 충당금 적립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스신평은 “개별 저축은행의 자본규모, 경상적인 영업수익규모 등을 고려하면 충당금 적립부담은 크지 않은 수준이다”라고 분석했다.

금융 당국이 서민금융 공급을 이유로 저축은행 다중채무자에 대한 충당금 적립 요건을 완화했지만, 여전히 다중채무자의 부실 위험이 큰 만큼 관리·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이스신평은 “내수경기 회복 지연 등으로 가계대출의 건전성 저하 압력이 높아지고 있어, 다중채무자의 건전성 추이와 이에 따른 충당금 적립부담 수준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다른 금융사 관계자는 “저축은행은 다중채무자 비중이 높지만, 다른 업무 권역에 비해 다중채무자 부실에 대한 대비책은 부족하다”라며 “금융 당국이 다중채무자의 상황을 세심히 살펴봐야 이들의 부실이 저축은행권까지 전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