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수장을 맞이한 현대캐피탈이 글로벌 영토 확장에 나섰다. 유럽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동시에 호주, 동남아 시장 진출을 본격화한다. 지난해 다소 주춤했던 해외법인 실적을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캐피탈은 추석 연휴 직전 이사회를 통해 올 하반기 중으로 독일 현지법인 현대캐피탈뱅크유럽(HCBE)에 2315억원 규모를 투자하기로 했다. 프랑스 현지법인 현대캐피탈프랑스(HCF)에도 147억원의 자금을 수혈한다.
현대캐피탈의 이같은 사업 전략에는 지난 6월 취임한 정형진 대표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형진 대표는 1970년생으로 1999년 골드만삭스에 입사한 이후 IB(기업금융) 전문가로 꾸준히 경력을 쌓았다. 2014년 골드만삭스 서울지점 한국 대표에 올라 10년간 국내외 주요 기업들을 대상으로 투자·금융 자문을 수행한 정통 글로벌 금융 전문가로 평가 받았다.
현대차그룹에서도 해외사업에 특화된 적임자로 평가받는 만큼, 해외 진출을 본격화했다는 시각이다. 특히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현대캐피탈 경영 분리 당시 해외사업 금융지원에 신경 써달라고 주문한 점은 정 신임 대표 경영행보에 궤를 같이 한다. 향후 해외사업 실적이 정 대표의 경영 시험대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만큼 글로벌 시장 경쟁력 강화라는 과제는 정 대표에게 남다른 숙제다. 현재 14개국에서 운영 중인 17개 법인의 수익성을 개선하면서도, 리스, 구독, 중고차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글로벌 완성차 판매 확대를 꾀해야 한다. 추가 시장 공략을 통해 안정적인 해외 사업 수익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 셈이다.
정 대표가 가장 먼저 손을 댄 곳은 유럽 시장이다. 최근 현대캐피탈 글로벌 사업 핵심 해외법인인 미국, 중국, 영국의 실적이 주춤하자 이를 상쇄할 수 있는 추가 시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읽힌다.
실제 세 곳 해외법인의 2022년 기준 세전이익은 ▲미국법인(HCA) 8492억원 ▲중국법인(BHAF) 1123억원 ▲영국법인(HCUK) 1260억원을 기록하며 각각 37.5%, 11%, 13.7%씩 감소했다.
올해 중 투자가 예정된 HCBE는 현대캐피탈이 2016년 설립한 독일 현지법인이다. 현대자동차·기아의 완성차 판매에 필요한 할부·리스 상품 등을 판매한다. 2019년 설립 후 지분의 51%를 유럽 금융그룹 산탄데르에 매각하면서 합작법인 형태로 전환했다. 지난해 401억원 당기순익을 내는 등 해외법인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HCF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HCF는 현대캐피탈이 프랑스 기반 금융그룹 소시에테제네랄 그룹 자회사 CGI 파이낸스와 함께 2022년 1월 출범한 회사다. 출범 첫해 18억원의 당기순익을 거둔 HCF는 지난해말 127억원의 당기순익을 기록했다.
호주·인도네시아 시장에도 손을 뻗었다. 현대캐피탈은 지난 3월 호주 금융당국으로부터 금융업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오는 11월부터 호주 전역에서 본격적으로 영업을 펼쳐 나갈 예정이다.
호주법인(HCAP)은 지난해 315억원의 손순실을 기록했다. 2022년 -12억원에 비해 적자 폭이 확대됐다. 현대캐피탈은 독자적으로 구축한 글로벌 IT 시스템을 활용해 통상 현지에서 2~3일의 시간이 소요됐던 심사 시간을 30분 이내로 줄이는 등 차별화를 통해 손실 폭을 줄여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인도네시아 현지 여신전문금융사 ‘파라미트라 멀티파이낸스(Paramitra Multifinance)’를 인수하는 작업도 지난 4월 마무리했다. 인도네시아는 현대차 동남아 생산·판매 거점이 위치해 그룹의 전략적 요충지로 평가받는 곳이다. 현지 시장에 최적화된 맞춤형 전략을 앞세워 내년 4월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전대현 기자 jdh@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