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한국수출입은행(수은)이 정책자금을 투자·지원한 회사 10곳 중 6곳이 최초 출자 당시보다 회사의 가치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출자할 당시보다 장부가액이 6000억원 이상 떨어졌다. 특히 대출금을 회사의 주식으로 대신 받은 출자전환을 한 회사의 경우에는 절반가량이 자본잠식에 빠진 상태였다. 수은이 출자회사에 투입하는 자금은 국가의 정책자금인 만큼 투자금 회수를 높이기 위한 수은의 출자회사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수은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지난 6월 말 기준 출자회사 현황 자료에 따르면 수은의 출자회사는 ▲현물출자 수령(7개) ▲정책성 출자(8개) ▲여신성 출자(34개) ▲대출금 출자전환 등(57개) 등 106개다.

수은이 출자한 106개의 회사 가운데 취득가액보다 장부가액이 줄어들거나 장부가액을 평가하지 못한 곳은 63개에 달했다. 출자회사의 59.4%가 투자할 당시보다 기업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출자회사의 장부가액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쉽게 말해 현재 주식의 가치가 취득 당시보다 떨어졌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취득가액은 회사에 출자할 당시 가격을 의미하며, 장부가액은 이를 재평가한 가격이다.

63개 회사의 경우, 취득가액이 1조7775억원이었으나 지난 6월 말 장부가액은 1조1576억원이었다. 취득가액 대비 장부가액이 34.8%(약 6199억원) 감소한 것이다.

장부가액이 줄어든 회사 대부분이 수은으로부터 여신성 출자를 받은 곳이었다. 여신성 출자 회사 중 13곳이 취득가액 대비 장부가액이 줄어들었다. 수은이 대출 성격으로 돈을 지원한 회사의 약 37%가 경영 가치가 떨어졌다는 의미다. 이 회사들의 취득가액은 1701억원이었으나, 장부가액은 1566억원으로 7.9% 감소했다. 현물출자 수령 회사 중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경우 취득가액이 1조5565억원이었으나, 장부가액이 9687억원으로 줄었다.

서울 여의도 수출입은행 전경.

수은은 자금을 빌려준 뒤 대출금을 출자전환한 회사 대부분의 장부가액을 0원으로 처리했다. 대출금을 출자전환 등으로 처리한 57곳 중 48곳이 장부가액을 평가하지 않았다. 장부가액이 0원이라는 의미는 수은이 대출을 실행했다가 회수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해 손실 처리(상각)한 것이다.

특히 수은이 대출금 출자전환 등의 조치를 취한 회사 중 카프로와 에코조인, 크레아군산 등 32개사가 자본잠식 상태였다. 출자전환은 대출금을 회수하는 대신 기업의 주식과 맞바꾸는 것이다. 금융기관은 의결권을 확보해 기업 가치와 경영 상태를 제고해 자산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출자전환을 한다. 그러나 수은이 출자전환한 회사의 56.1%가 자본잠식에 빠져 회생이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일부 회사는 폐업이나 파산 처리된 경우도 있어 수은이 손실을 떠안은 경우도 있다.

수은 관계자는 대출금 출자전환 조치를 한 데 대해 “기업구조조정 절차 또는 채권금융기관협의회 결의에 따른 것”이라면서 장부가액이 0원인 것에 관해서는 “회수 가능성이 없는 것들은 상각을 한 건으로, 회생 가능성은 없지만 권리 관계는 있어 특수채권이 된 것들이다”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현재 수은의 ‘출자회사 관리위원회’에서 관리하고 있는 기업은 현물출자 수령·정책출자 회사에 집중돼 있다. 현재 관리위원회에 경영 현황을 보고하는 회사는 ▲한국도로공사 ▲교보생명보험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한국토지주택공사(LH) ▲KAI ▲인천항만공사 ▲여수광양항만공사 ▲중소기업은행 ▲한국자금중개 ▲한국해양진흥공사 ▲KSF선박금융 ▲CGIF(국제기구) ▲연합자산관리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 등 14곳뿐이다.

출자회사의 가치가 점차 떨어지고 있는 만큼 수은이 출자회사 관리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기형 의원은 “경기 부진이 이어지면서 출자회사의 경우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기업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면서 “수은이 출자회사 관리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