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생명보험사들이 하반기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과감한 영업 드라이브를 걸었다. 판매채널인 GA(법인보험대리점)에 통해 높은 시책(설계사에게 주는 보너스)을 제공하기로 하는 등, 파이 확장에 여념이 없다. 과도한 출혈경쟁이 소비자 피해를 야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이 적지 않다.

생보사들이 높은 판매촉진비를 제공하며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다 / DALL·E

1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이달 주요 생보사들은 건강보험 상품에 1500%, 최대 1900% 이상의 시책을 제공키로 했다. 황금연휴로 실질적인 영업일수가 짧다고 판단, 9월 실적에 끝장을 보겠다며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시책은 설계사가 상품을 팔면 모집 수수료 외에 추가로 받는 보너스다. 시책이 1800%라면 가입자가 내는 한달 치 보험료의 1800% 이상을 보너스로 받게 된다. 시책은 매주 또는 매달 다르게 책정하면서 유연하게 조정된다. 최근 건강보험이 생보사 주력상품으로 떠오르면서 판매경쟁이 과열됐다.

이달 공격적인 시책을 내건 곳은 흥국생명이다. 흥국생명은 건강보험을 대상으로 순금 시책을 포함해 최대 1900% 시상금을 걸었다.

삼성생명은 GA설계사들에게 최대 1600% 시책을 준다. 건강보험 상품을 판매한 설계사는 이달 300%의 시책을 선지급받은 뒤 13차월이 되면 1300%의 보너스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신한라이프도 1650%라는 만만찮은 보너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상품 판매 당월에는 350%를 지급한 뒤, 13차월에 1300%의 시책을 설계사에게 일시에 지급한다. 동양생명은 치매간병보험에 최대 1600%를 보장한다.

한화생명이 최대 1500%의 시책으로 맞불을 놨다. 익월 500%의 시책을 선지급한 후, 고객 유지시 13차월에 최대 1000%를 보너스로 제공한다.

생보사 주요 상품 시책 / IT조선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 한 곳이라도 시책을 늘리기 시작하면 다른 보험사들도 대응에 나설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시책 경쟁이 과도한 수준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과도한 시책 제공은 보험사 재무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보험료 인상요인 및 소비자 혜택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더 큰 문제는 수수료 중심의 영업방식이 지속되면, 소비자가 정작 본인이 원하는 보험이 아닌, 설계사 필요에 의한 보험을 가입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점이다. 높은 수수료를 지급하는 상품 위주로 판매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설계사들이 고객들의 기존 계약을 해지시키고 높은 시책을 제공하는 상품으로 재가입시키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금융당국이 금지하는 부당 승환계약”이라고 설명했다.

부당 승환계약은 기존 보험계약을 부당하게 소멸시키면서 신계약을 청약하게 하거나, 신계약을 청약하게 한 후 기존보험계약을 부당하게 소멸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소비자는 기존 보험 계약을 해약하면서 납입보험료보다 적은 해약환급금을 수령하거나 보험료 상승 등 금전적 손실을 입을 수 있다. 면책기간도 다시 적용됨에 따라 보장이 단절되는 위험에도 노출된다. 현행 보험업법 제97조 제1항에서는 부당승환을 불법행위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현재 금융당국은 부당승환 계약을 체결하게 한 설계사를 대상으로 과태료와 영업정지 등의 제재를 가하고 있다. 앞으로 기관제재를 더욱 강화하고 의도적인 위반행위는 등록취소 등 제재 수준을 대폭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높은 시책이 부당승환을 발생시킬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다”며 “사유를 불문하고 부당승환이 발생한다면 그에 대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IT조선 전대현 기자 jdh@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