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우리금융그룹의 증권사 합병 과정에서의 특혜 의혹을 들여다볼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정작 증권사 합병 인가를 심사할 당시에는 합병을 위한 모든 조건이 충족한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금융위원회 정례회의에서 우리종합금융과 한국포스증권의 합병에 대해 ‘찬성표’를 던졌다. 금감원은 우리투자증권 출범 과정에서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투자증권이 출범한 지 2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금감원이 다시 합병 과정을 살펴볼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금융위는 당혹스러운 기색이다. 금융권에서도 당국이 합병을 인가한 사안에 대해 재점검을 한다면 시장 질서가 어지러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금융위원회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오기형 의원실에 제출한 ‘한국포스증권과 우리종합금융의 합병 인가 심사 보고서’에 따르면 금감원은 ▲합병 목적의 적정성 여부 ▲경쟁제한 요건 ▲재무건전성 준수 여부 ▲합병 후 업무수행 체제 ▲관련법령 준수 여부 ▲대주주 요건 등의 항목을 심사한 결과, 모든 항목을 충족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금감원은 이 보고서에서 “한국포스증권와 우리종합금융의 합병 인가 신청에 대해 심사한 결과, 법령상 요건을 충족하고 있으므로 신청한 내용대로 합병을 인가함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심사 의견을 밝혔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5월 우리종합금융과 한국포스증권의 합병 인가 심사에 돌입했다. 금융사의 인수·합병(M&A)을 위해서는 금융 당국의 인가가 필요하다. 금융위원회의 정례회의에서 M&A에 대한 최종 승인이 내려지기 전 금감원이 이와 관련한 인가 심사를 실시한다.
문제는 금감원이 다음 달 예정된 우리금융지주 정기검사 대상에 우리투자증권의 출범 과정을 포함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원장 출신인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우리종합금융과 한국포스증권의 합병 예비인가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아닌지, 합병까지의 의사 결정이 적절했는지 들여다볼 예정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다만, 금감원은 검사가 시작되기 전이라서 공식적인 확인을 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최근 특혜 의혹이 불거진 우리투자증권의 발행어음 업무에 대해서도 심사에서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발행어음 업무를 하면 자금조달을 쉽게 할 수 있다. 증권사가 이 업무에 대한 인가를 받으려면 자기자본이 4조원 이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투자증권의 자본금은 1조1500억원에 불과해 발행어음 인가를 위한 자기자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금감원은 이에 대해 우리투자증권이 단기금융업 겸영기간(10년)에 발행어음 업무를 할 수 있다고 의견을 냈다. 또한, 금융 당국은 종합금융투자사 제도의 취지를 고려해 우리투자증권의 어음 발행한도를 자기자본 대비 200% 이하로 자율 준수하도록 했다.
대주주 적격성 항목에 대해서도 금감원은 법령상 요건을 모두 충족한다고 평가했다. 또한, 외부평가위원회에서도 자기자본·인력·물적설비·사업계획 타당성·이해상충방지체계 요건·대주주 적격성 등에 대한 평가에서도 적정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복현 금감원장 역시 우리종합금융과 한국포스증권의 합병을 결정한 지난 7월 24일 정례회의에 참석해 합병에 찬성했다. 당시 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이날 정례회의에서는 우리종합금융과 한국포스증권의 합병 및 단기금융업무 인가, 한국포스증권의 금융투자업 변경 예비인가 및 업무 단위 추가등록, 우리금융지주의 우리투자증권 자회사 편입을 인가·등록·승인하는 내용이 원안대로 의결됐다.
우리투자증권 출범 과정에서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던 금감원에서 정기검사를 통해 합병 과정을 다시 살펴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금융위에서는 불편한 심기를 보이고 있다. 금융위는 우리투자증권 출범이 결정된 정례회의에 대해 “금융감독원장은 회의에 참석했고, 우리종합금융의 합병인가 관련 안건은 모두 전원 합의로 원안 의결됐다”며 “제출된 사업계획의 이행여부는 매년 사업연도말 이후 45일 이내 금융감독원장에게 보고하도록 인가조건을 부여했다”고 강조했다.
금융권에서는 금융 당국이 인가한 우리투자증권에 대해 금감원이 다시 점검한다고 해도 합병 결정이 번복되지는 않겠지만, 심사 과정의 신뢰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금감원의 자가당착 아니겠냐”며 “금융 소비자들이 금감원을 더 신뢰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