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건물.

한 은행에 여러 대출을 가지고 있는 ‘복수 채무자’가 대출을 일부 상환할 때 가장 유리한 조건의 대출 원리금부터 갚을 수 있도록 자동이체 출금 우선순위가 정비된다. 기존에는 복수 채무자가 특정 채무를 우선 변제하려고 해도 대출 간 자동이체 출금 순서에 명확한 기준이 없어 채무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대출 상환이 이뤄졌다. 금융 당국은 이러한 업무 처리 행태가 채무자의 보편적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고, 연체일이 오래되거나 이자율이 높은 대출 등을 우선적으로 상환할 수 있도록 자동이체 출금 우선순위 기준을 세우기로 했다.

금융감독원은 ‘공정금융 추진위원회’를 통해 동일한 은행에 복수의 채무를 가지고 있는 채무자가 자동이체로 원리금을 일부 변제할 때 채무자의 이익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던 기존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1일 밝혔다. 올해 1월 말 기준 18개 은행의 채무자 약 1424만명 중 2건 이상의 채무를 가지고 있는 복수 채무자는 전체의 19%인 약 275만명이다.

금감원은 채무자의 보편적 이익을 고려할 수 있도록 자동이체 출금 우선순위를 정비한다. 민법 제477조에서는 복수 채무를 일부 변제할 때 채무자가 우선 변제할 채무를 지정하지 않으면 채무자에게 변제이익이 많은 채무의 원리금부터 우선 충당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현재 일부 은행에서는 자동이체 시스템을 통한 채무변제가 수행되는 과정에서 채무자의 변제이익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복수 채무자가 대출 2건에 대해 이자연체가 발생한 상황에서 연체가 오래된 대출의 이자액을 먼저 변제할 의도로 자동이체 계좌에 돈을 입금해도 은행의 자동이체시스템이 채무자의 의도를 반영하지 못한다. 채무자의 변제이익을 고려할 때 연체일이 오래된 대출이나 높은 이자율의 대출의 원리금을 우선 상환하는 게 맞다. 그러나 현행 시스템에서는 채무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연체일수가 적은 대출의 이자가 먼저 상환돼 신용점수 하락 등 불이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금감원은 은행권과 협의해 복수 채무에 대해 연체일수가 오래된 채무를 우선 변제하고, 연체일수가 같을 경우 이자율이 큰 채무를 우선 변제하도록 자동이체 출금 우선순위 표준안을 마련했다.

채무자의 우선변제채무지정권에 대한 안내도 강화한다. 채무자는 기한이 도래한 원리금의 전체를 상환하지 못하고 일부만 변제할 수 있는 상황일 때 우선 변제할 채무를 지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은행권은 복수 채무의 일부만 변제하는 상황 발생 시 채무자의 변제순위 의견을 반영하는 업무절차는 대체로 미흡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상품설명서에 우선변제채무지정권 관련 내용을 추가해 소비자에 대한 설명을 강화할 계획이다. 또, 복수채무 연체 발생 시 우선변제채무지정권 활용을 별도로 안내해 채무자 스스로 변제이익이 많은 채무부터 상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채무자는 복수 채무의 일부 변제 시 우선변제채무지정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 체무 변제에 유리한 선택을 할 기회가 충분히 보장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권리를) 행사하지 않더라도 정비된 자동이체 출금 우선순위에 따르게 되면 예상치 못한 기한이익상실 등의 불이익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복수 채무자를 위한 우선변제채무지정권 안내 강화 등의 조치는 올해 3분기 상품설명서 등의 개정을 통해 시작한다. 은행별 자동이체시스템 및 업무 매뉴얼 정비는 연내 마무리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