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전경/산업은행

산업은행이 1000억원의 투자를 단행한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글로벌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해 대규모 스케일업 투자를 진행한 지 3년 만에 투자금 회수조차 불투명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산은은 지난해까지 장부상 이 기업의 가치를 투자금의 2.3배인 2300억원으로 계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22일 금융권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지난해 자본총계는 마이너스(-)884억8000만원을 기록했다. 지속된 적자로 손실 규모가 자본금을 넘어서는 완전 자본잠식에 빠졌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카카오(035720)의 계열사로 인공지능(AI) 기반의 플랫폼·솔루션 개발 기업이다. 산은은 2021년 스케일업 금융실을 통해 이 회사에 1000억원을 투자했다. 당시 산은이 평가한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몸값은 1조원이었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 투자한 그 해 전체 스케일업 투자 금액이 4800억원이라는 점은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 대한 산은의 평가가 높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산은의 투자 이후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다른 투자사들의 러브콜을 받았고 2조3000억원까지 몸값을 올렸다.

그러나 산은은 투자를 단행한 지 3년 만에 투자금 회수마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면서 지분 가치도 뚝 떨어진 것이다. 산은은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 대한 지분 평가를 새롭게 진행하며 투자지분에 대한 가치를 낮춘 것으로 전해졌다. 산은 관계자는 “기업 가치를 평가를 진행해 지분 평가 가치를 0원까지는 아니지만 새롭게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로고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제공)

산은은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지분 가치 재평가를 다른 투자자에 비해 뒤늦게 진행했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산은은 작년 말까지 보유한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지분 가치를 2300억원으로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다른 주주사들은 지난해 투자 지분 가치를 곧바로 ‘0’으로 반영했다. 투자 회수가 어렵다는 판단에 투자지분을 전액 상각 처리한 것이다. 카카오 역시 투자지분(85.1%)에 대한 평가가치를 2022년 1631억원에서 지난해 573억원으로 대폭 줄여 계상했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에 우호적일 수밖에 없는 카카오보다 지분가치 재평가를 늦게 한 셈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작년 말까지 산은이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투자지분을 장부상에 2300억원으로 계상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투자한 회사가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음에도 장부가액을 유지하는 것은 회계 신뢰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산은은 “평가기관을 통해 적정하게 지분 평가를 주기적으로 회계 장부에 반영하고 있다”며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선을 그었다.

금융권에서는 산은이 국책은행으로서 다른 투자기관보다 신중한 투자 결정이 필요했다고 지적이 나온다. 산은이 벌어들인 이익을 정부에 배당하는 상황에서 투자 손실은 결국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을 조성하는 공적인 역할을 맡은 산은이 한정된 재원으로 투자를 진행하는 만큼 사전에 기업 분석과 산업 전망을 더 꼼꼼하게 진행했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또다른 IB업계 관계자는 “국책은행인 산은은 정부에 배당하면서 국가의 재정 건전성 강화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투자 실패의 의미가 민간 기업과는 조금 다르다”며 “산은의 투자 실패는 다른 기업에 대한 투자 기회를 놓쳤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