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 전문가들은 토큰증권발행(STO) 사업에서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신속한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사진은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지난 1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24 가상자산 콘퍼런스’에서 토큰증권 시장 활성화를 주제로 강연을 하는 모습. /조선비즈

국내 금융 시장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토큰증권 발행(STO·Security Token Offering)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제도화 법안 통과가 무산된 이후 지금껏 금융 당국과 정치권도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서, 토큰증권 사업을 위해 많은 비용과 인력을 투입했던 증권사들은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실이 주관해 열린 ‘토큰증권의 미래’ 세미나에서는 정치권이 법제화를 위해 속도를 내지 않을 경우 토큰증권 시장의 주도권이 미국과 일본 등 다른 금융 선진국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류지해 미래에셋증권 이사는 “안타깝게도 지난 국회에서 토큰증권 제도화 법안이 통과되지 못해 원점에서 다시 규제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카사 등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받은 회사들은 4년이 넘어 6개월 단위로 다시 지정을 받아야 하고, 새로 사업을 준비하는 회사들은 규제 정비가 안돼 있어 사업을 제대로 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지은 대한변호사협회 금융변호사회장은 “국내에서 규제 불확실성이 오랜 기간 이어지면서 일부 국내 조각투자 발행사들은 해외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면서 “블록체인 기술의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토큰증권은 부동산이나 채권 등 여러 자산을 쪼갠 뒤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토큰 형태로 발행하는 자산을 뜻한다. 비트코인 등 비증권형 토큰은 두나무와 빗썸 등 가상자산 거래소의 영역이지만, 토큰증권을 발행하고 유통하는 STO 사업은 증권사들이 담당한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토큰증권이 제도화되면 올해 34조원 규모의 시장이 조성되고, 오는 2030년에는 시장 규모가 367조원 이상으로 급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2월 ‘토큰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여러 증권사들은 토큰증권 시장이 곧 열릴 것을 대비해 조직을 만들고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등 많은 투자를 해 왔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 SK텔레콤, 하나금융그룹 등과 ‘토큰 동맹’을 맺었고, 토큰증권 통합플랫폼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KB증권과 NH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도 토큰증권 컨소시엄을 구성해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당초 올해부터 시작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토큰증권 사업은 현재 법제화 시점을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토큰증권 법안이 결국 통과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의 경우 지난해 5월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의 코인 대량 보유 파문이 불거진 이후 속도를 내면서 통과돼 올해 7월부터 시행이 됐지만, 토큰증권 법안에는 여야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픽=손민균

국내에서 토큰증권 사업이 표류하고 있는 반면 미국과 일본 등 금융 선진국에서는 이미 시장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

가상자산 분석업체 쟁글에 따르면 미국은 이미 2017년부터 토큰증권 가이드를 만들고 발행과 매매를 시작했다. 키움증권 리서치센터는 지난해 기준으로 12개의 토큰증권이 거래소에서 매매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들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실물자산(RWA)에 토큰 형태로 투자하는 펀드를 내놨고, JP모건과 프랭클린템플턴 등 다른 대형 금융사들도 관련 상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지난 2020년 금융상품거래법이 개정되면서 토큰증권 시장이 제도화됐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일본 토큰증권 시장의 자산 규모는 2021년 127억엔, 2022년 482억엔에서 지난해에는 2349억엔으로 급성장했다. 일본에서 토큰증권 사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최근 아이티센 등 국내 관련 업체들도 일본 시장 진출에 나서고 있다.

핀테크업계 관계자는 “지난 21대 국회에서 토큰증권 법안을 발의했던 윤창현 국민의힘 전 의원은 경제학자 출신으로 가상자산과 금융 시장을 잘 아는 인물이었지만, 현재 국회에서는 그만한 전문가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토큰증권 제도화가 계속 늦어질 경우 상품 개발, 운용 등에서 미국과 일본 등에 비해 경쟁력이 훨씬 뒤처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