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업계가 빅테크 업체의 간편결제 대항마로 내놓은 ‘공통 QR 서비스’가 출시 한달 차에 접어들었지만 이렇다할 진전이 없다. 업계는 그간 제각각이었던 QR규격을 통일해 범용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지만, 국내 결제 인프라와는 맞지 않는 서비스 아니냐는 자조섞인 목소리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9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여신금융협회는 8개 카드사(신한·현대·삼성·KB국민·롯데·하나·우리·NH농협카드)와 모바일 QR결제를 위한 공통 규격을 마련하고 QR결제 서비스를 도입했다.
여신협회는 카드사, 부가가치통신업자(VAN사), 간편결제사와 협의를 거쳐 글로벌 표준인 EMV를 규격으로 하는 공통 QR규격을 마련했다. EMV는 유로페이·마스터카드·비자카드 앞글자를 딴 약자로 결제시장 글로벌 표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간 국내 시장은 QR 규격이 카드사별로 상이한 까닭에 가맹점마다 QR결제 가능 카드가 달랐다. 가맹점내에 소비자가 쓰는 신용카드와 같은 QR 규격이 아니면 결제를 할 수 없었던 것. 공통 QR규격이 마련되면서 소비자들은 휴대폰 기종과 상관없이 신용카드사에서 제공하는 QR결제 서비스를 하나의 통합된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실제 이용 가능한 가맹점이 극히 적을 뿐 아니라 국내 소비자들의 결제 방식과 익숙치 않아 실효성이 적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현재 공통 QR규격을 적용한 가맹점은 ▲하나로마트 ▲이케아 ▲이디야커피 ▲매머드커피 ▲메가MGC커피 등으로 가맹점수는 13만~14만개 수준으로 알려졌다. 국내 전업 카드사의 신용카드 가맹점 수가 300만개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5%도 채 안되는 것이다.
가맹점 모집이 어려운 대표적인 이유로는 단말기 보급 문제가 거론된다. 공통 QR규격 결제는 이용자가 신용카드사 결제 앱을 실행하고 QR코드를 생성하면, 가맹점주가 QR결제 단말기로 QR코드를 찍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현재 대다수 가맹점은 QR 결제 단말기를 갖추고 있지 않다. QR 결제를 위해서는 단말기를 가맹점주 사비로 구매해야 하는 데, 관련 법과 의무가 없어 설치 유인이 떨어진다. 아울러 QR 단말기 설치를 위한 작업도 통상 가맹점 업무시간에 이뤄져 가맹점주의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추가 가맹점을 확보하려면 카드사들이 가맹점 단말기 설치 비용을 지원하거나 추가 마케팅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데, 각자 이해관계가 첨예해 먼저 나설 카드사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이미 개별 카드사들이 각자 오픈페이를 운영하고 있는 와중에 공통 QR규격 활성화를 위해 추가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부담일 것”이라고 말했다.
여신협회에서도 추가 가맹점 확보 정보를 취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 서비스 도입 초임에도 동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평가다.
기존 결제 방식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QR로 갈아탈지도 의문이다. 지난해 금융결제원이 국내 편의점을 대상으로 진행한 결제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터치나 삽입형 방식의 카드결제 비중은 96.58%에 달했다.
또 다른 카드업계 관계자는 “중구난방이던 QR규격을 통일하자는 서비스 취지는 좋지만, 이미 쓸 수 있는 간편 결제 수단이 너무 다양하다”며 “특히 국내는 마그네틱 보안전송(MST) 규격의 삼성페이가 자리잡고 있어 소비자 결제 방식 변화를 일으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전문가들은 이미 예고된 실패란 진단을 내놓는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중국의 경우 실물 신용카드 보급이 활성화되기 전 QR결제가 보급되면서 활성화됐지만 국내 실정은 그렇지 않다”며 “이미 카드 보급률이 높은 만큼 QR결제가 활성화되기는 어려운 곳”이라고 진단했다.
IT조선 전대현 기자 jdh@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