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은행의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 금고 입찰 성공률이 9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막대한 자금력을 등에 업은 시중은행의 치열한 공세에 지방은행은 본점을 둔 지역의 금고마저도 내어주는 상황이다. 정부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내걸었지만, 정작 지역경제의 주축인 지방은행은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지자체 금고로 선정되면 해당 지자체와 산하기관의 예산과 기금을 관리할 수 있다.
5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비수도권 지자체 금고 낙찰률은 최근 3년 연속 90%를 넘었다.
5대 은행의 비수도권 지자체 금고 입찰 건수는 2021년 60건이다. 이 가운데 57건을 낙찰받으며, 낙찰률 95%를 기록했다. 2022년에는 입찰 참여 건수가 52건으로, 단 2건만 낙찰에 실패했다. 낙찰 건수는 50건으로 낙찰률은 96%다. 지난해 입찰 건수는 44건으로, 낙찰 건수는 40건이다. 낙찰률 91%다.
시중은행 중에서도 NH농협은행과 신한은행은 비수도권 지자체 금고 입찰에서 백전백승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NH농협은행은 2021년 47건을 시작으로 2022년 42건, 2023년 35건의 비수도권 지자체 금고 입찰에 참여해 전부 낙찰을 받았다. 신한은행은 2021년에는 강원도, 2022년에는 강원도와 충청북도, 지난해에는 강원도와 경상북도에서 입찰에 참여했고 낙찰률은 100%를 기록했다.
시중은행이 비수도권 지자체 금고에서 선전할수록 지방은행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지방은행은 최근 3년간 비수도권 지자체 금고의 입찰에만 뛰어들고 있는데, 낙찰률이 50% 안팎에 그치고 있다.
2021년 iM뱅크(옛 대구은행)·경남·부산·전북·광주·제주은행 등 지방은행은 비수도권 지역에서 23건의 입찰에 뛰어들어 단 10건만을 낙찰받았다. 낙찰률은 43%다. 2022년에는 15건의 입찰에 참여해 8건의 낙찰에 성공하며 낙찰률 53%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입찰 참여 13건 중 6건을 성공했다. 낙찰률은 46%다. 전북은행의 경우에는 최근 3년간 전북에서 12건의 입찰에 뛰어들었으나, 단 1건만 성공했다. 광주은행 또한 같은 기간 21건의 입찰에 뛰어들어 5건만 낙찰받았다.
시중은행이 비수도권 지자체 금고까지 눈을 돌리는 데는 수도권 영업 환경의 악화라는 이유가 있다.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 지자체 금고를 차지하기 위한 시중은행의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또한, 수조원의 자금을 싸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시중은행이 비수도권 지자체 금고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지자체 금고 이자율은 연 1% 미만으로, 금고 선정 은행의 경우 거액의 저원가성 예금을 확보할 수 있다. 지역 금융 소비자를 한 번에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인 부분이다.
지방은행은 시중은행의 공세를 막기 어렵다. 지자체 금고 사업자 선정 시 적용되는 사업자 평가 기준에는 출연금을 포함한 지자체 협력사업 계획이 포함된다. 시중은행은 막강한 자본력을 기반으로 제시할 수 있는 혜택이 크다. 지방은행이 거점 지역의 지자체 금고를 사수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약하더라도 시중은행보다 많은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최근 시중은행에 거점 지역 지자체 금고를 빼앗기면서 비상 회의까지 하며 대책을 세웠다”라며 “거점 지역의 금고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사수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시중은행 입찰 참여가 많아진 뒤로는 지역 사회에 제공하는 혜택 규모를 늘리고 있다”라고 전했다.
정부는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지방경제 활성화를 추진 중이지만, 지역경제의 중심이 되는 지방은행은 과당경쟁 상황에 빠지고 있다. 결국 지방은행은 금융 당국에 “지자체 금고 선정 기준에서 지역재투자 배점을 확대해달라”라고 요청했다. 현재 금융감독원은 지방은행의 건의사항을 행정안전부에 전달한 상태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역재투자 평가 결과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관련 기관과 협의를 지속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국회 역시 비수도권 지자체 금고의 과당경쟁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민병덕 의원은 “인구감소, 지방소멸, 지역불균형을 걱정하면서 정작 지방은행 및 지방경제는 무한경쟁에 무방비로 던져지고 있다”라며 “입법 이전에 민주당 지자체장과 중앙당의 정책 협약을 통해 지방은행 및 지방경제 발전 선순환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지역의 돈이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소비될 때 지역 불균형도 해소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