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몬·위메프 판매대금 정산 지연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6일 피해자들이 서울 강남구 티몬 신사옥에서 환불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의 불길이 카드업계와 전자지급결제대행(PG)업계로 번지고 있다. 금융 당국이 소비자 보호를 이유로 카드사와 PG사에 적극적인 결제 취소(환불) 지침을 내리면서 당장 관련 업계의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번 사태로 카드업계·PG업계가 입을 손실 규모가 1000억원대 안팎에 육박할 것이란 추산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5일 서울시 여의도 금감원 본원에서 티몬·위메프 정산 지연 사태 관련 브리핑을 열고 카드사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소비자 환불을 주문했다. 금감원은 같은 날, 8개 카드사 최고사업책임자(CCO)를 불러 소비자의 청약철회권 및 할부항변권 보장에 동참할 것을 요청했다.

청약철회권과 할부항변권이란 소비자들이 구입한 물품이나 서비스에 문제가 생길 경우 결제를 취소하거나 할부 잔액을 지불하지 않을 수 있도록 보장받는 권리다. 거래액이 20만원 이상, 할부 기간이 3개월 이상일 때 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이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브리핑룸실에서 티몬·위메프 정산지연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카드업계가 티몬·위메프 사태의 소비자 환불을 우선 부담할 시, 떠안을 손실은 1000억원대 안팎으로 예상된다. 티몬·위메프와 같은 온라인 쇼핑몰 판매대금 정산 구조를 살펴보면 소비자 결제 금액이 카드사→PG사→쇼핑몰→쇼핑몰 입점 업체(셀러) 순으로 지급된다. 보통 카드사에서 쇼핑몰까지 판매대금이 지급되는 데 걸리는 시일은 2~3일이다. 즉, 티몬·위메프에서 발생한 거래액의 2~3일어치는 카드사와 PG사에 묶여 있는 셈이다.

카드사와 PG사가 결제 취소로 막아뒀던 자금 역시 이 2~3일 정산 기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애플리케이션(앱) 및 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 6월 한 달 동안 티몬과 위메프의 결제 추정액은 1조1480억원에 달한다. 양 쇼핑몰에서 소비자 결제가 전부 카드로 이뤄졌고 카드사 정산기일 3일 동안의 결제액을 모두 환불해야 한다고 가정했을 때, 환불 금액은 최대 1150억원 수준이다.

카드업계는 금감원의 적극적인 환불 지침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금융 당국의 지침이 내려온 데다 소비자 민원도 카드사를 향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이번 주에만 카드사들로 접수된 티몬·위메프 환불 관련 민원이 1만건을 넘겼다”며 “심지어 티몬·위메프 측 역시 ‘환불 문의는 카드사에 하라’고 소비자에게 안내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당장은 카드업계가 1000억원에 가까운 손실을 떠안겠지만 이 손실은 나중에 PG사로 전이될 전망이다. 카드사는 유사시 PG사를 상대로 상계(相計)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카드사가 PG사에 내야 할 채무(판매대금)를 소멸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카드사가 정상적으로 받아야 할 돈을 환불해서 손실이 발생했을 때 손실만큼 혹은 손실의 일부 금액을 다음 PG사 판매대금 정산에서 깎는 절차다. 카드사의 상계 권리는 각 카드사와 PG사의 상호 합의 아래 계약에 명시돼 왔다.

더 큰 문제는 PG사와 온라인 쇼핑몰 사이 선(先)정산 관행에서 비롯된다. 일부 대형 PG사는 티몬·위메프와 같은 대형 온라인 쇼핑몰을 상대로 판매대금을 즉시 납부하는 거래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카드사의 판매대금이 들어오기 전 PG사가 자체 보유한 자금으로 쇼핑몰에 판매대금을 납부하고 이후 2~3일 뒤 카드사로부터 판매대금을 다시 받아 자금을 메꾸는 구조다.

2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금융민원센터에 티몬·위메프 사태와 관련해 피해를 입은 소비자 및 판매자가 신속히 민원을 접수할 수 있도록 민원접수 전담창구가 마련돼 있다. /뉴스1

선정산을 했던 PG사 입장에서는 카드사로부터 돈을 한번 받지 못하는 수준에서 사태가 마무리되는 게 아니다. 이미 티몬·위메프에 판매대금을 납부해 잠재 손실이 발생한 상태인데 카드사로부터 받아야 할 돈까지 못 받는 이중 손실에 처한다. 카드사의 상계 결정이 내려지면 1000억원대를 웃도는 손실이 최종적으로 PG업계로 떨어지는 것이다.

한 PG사 고위 관계자는 “과거에도 몇몇 헬스장이 선불로 장기 회원권을 판매하고 ‘먹튀’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카드사들이 환불 책임을 우선 짊어진 뒤 PG사에 상계 결정을 내려 그만큼 PG사에 손실이 발생한 적 있다”며 “이번 티몬·위메프 사태도 직관적으로 봤을 때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1000억원 안팎의 손실은 PG업계에 상당한 부담이다. PG업계 1위 NHN KCP의 지난해 순이익이 365억원, 현금성 자산이 2500억원임을 고려하면 1000억원대 손실이 PG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2위 토스페이먼츠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토스페이먼츠는 지난해 65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NHN KCP와 토스페이먼츠 모두 티몬·위메프의 주요 거래업체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