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인공지능(AI), 머신러닝(기계학습), 비대면 등 혁신을 상징하는 기술을 보험에 접목했다는 인슈어테크(보험+기술) 기업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국내·외 보험업계의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매번 거세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는 방증이다. 국내 인슈어테크사와 디지털보험사 다수도 이름만 혁신일 뿐, 실상은 ‘고객 데이터베이스(DB) 장사’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9일 미국의 대표적인 인슈어테크 레모네이드에 따르면, 레모네이드는 지난해 총 2억3690만달러(327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2022년에도 순손실(2억2500만달러)을 기록했다.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지출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레모네이드는 지난 4월 주주서한을 통해 장기적 관점에서 마케팅 비용을 2배 이상 늘릴 것이라고 밝혀 올해에도 순손실이 이어질 전망이다.
독일의 대표 인슈어테크로 꼽히는 위폭스AG는 무너질 위기에 몰렸다. 위폭스AG의 최고경영자(CEO) 마크 하티건은 주주들에게 올해 8월(여름) 중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공지했다. 위폭스AG는 2022년 3210만유로(484억원), 지난해에는 3580만유로(54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직원 60여명은 정리해고됐고, 독일을 비롯해 스위스·이탈리아에서 자동차보험 사업을 철수하며 몸집을 줄였다. 위폭스AG는 글로벌 투자은행 바클레이스와 JP모건 등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으며 한때 45억달러(5조8700억원)의 몸값을 자랑했었다.
레모네이드와 위폭스AG의 공통점은 보험에 AI·디지털을 결합했다는 점이다. 레모네이드는 AI와 머신러닝을 활용해 생명보험 등을 개발해 판매하고, 홈페이지에서 간편하게 가입할 수 있도록 해 비용을 크게 줄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위폭스는 자체적인 플랫폼을 만들어 설계사와 고객을 비대면으로 연결하는 것을 주요 사업으로 했다.
하지만 보험 시장은 여전히 대면영업이 강세라는 게 국내 보험업계의 시각이다. 기술이 고도화돼도 장기간 보험료를 내거나 복잡한 구조로 이뤄진 상품은 디지털을 통해 판매하기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국내 인슈어테크나 디지털보험사 다수는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데 집중하기보단, 고객 개인정보를 모으는 데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업계에선 보험에 가입할 가능성이 큰 고객의 개인정보를 모으는 것을 일명 ‘DB’라고 부르는데, 인터넷 등을 통해 손쉽게 확보한 뒤 이를 다른 보험사에 판매한다는 것이다. 디지털보험사들이 여행자보험 등 간편하고 싸게 가입할 수 있는 ‘미니보험’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다.
확보한 DB를 다른 회사에 넘기지 않고 자신들의 영업에 활용할 순 있지만, 이는 전통적인 대면영업 방식일 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최근 규제가 풀리면서 전통적인 보험사가 아니라도 DB를 모을 수 있게 됐다”며 “(인슈어테크들은) DB를 판매하거나 DB를 활용해 돈 되는 보험을 판매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보험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고객의 경우 대면으로 영업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