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기 악화로 건설사들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카드를 긁어 물품을 구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부 전업계 카드사 중심으로 계열 건설사 자금조달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기업계 카드사들의 구매전용카드 이용액이 크게 늘고 있다 / DALL·E

4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카드사 9곳(신한·삼성·현대·KB국민·롯데·하나·우리·BC·NH농협카드)의 5월 누적 구매전용카드 일시불 이용액은 15조8841억원이다. 전년 동기(14조2063억원) 대비 11.8% 증가했다.

구매전용카드는 기업 간 거래에서 납품업체와 구매업체 간에 어음이나 외상 거래로 대금을 결제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카드로 결제하는 거래 수단이다. 통상 기업이 카드사에 채권 발행을 의뢰하고, 만기일에 대금을 치르는 구조다. 만기일 전까지는 이자만 납입하면 돼 유동성 관리에 용이하다.

카드사 입장에선 수익성은 거의 없는 상품이지만, 매출 및 자산으로 잡혀 실적 산정에 유리한 측면이 있어 꾸준히 취급하고 있다. 이에 구매전용카드 누적 이용액은 꾸준히 증가세를 그리고 있다. ▲2021년 31조849억원 ▲2022년 33조6774억원 ▲2023년 34조7586억원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카드사 본업인 신판여건이 어려워지자 구매전용카드가 장기적으로 매출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법인 회원을 유지하는 동시에 기업 자산 규모를 확대하는 데 있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현대카드와 롯데카드 이용액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유독 눈에 띈다. 올해 누적 현대카드 구매전용카드 이용액은 6조190억원, 롯데카드의 경우 5조4309억원으로 전체 이용액의 72%나 됐다. 두 카드사 금액이 꾸준하게 전체 이용액의 절반을 넘기는 상황이다.

이는 계열사간 거래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롯데카드는 롯데그룹 지주사 전환 및 금산분리 정책에 따라 2019년 말 MBK파트너스-우리은행 컨소시엄에 매각된 이후에도 꾸준히 롯데그룹 계열사와 연을 이어가고 있다. 롯데그룹 계열사에 속해 있을 당시 운영하던 구매전용카드 규모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데 지난달에도 롯데건설과 800억원 규모의 구매전용카드 약정을 체결했다.

현대카드도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계열사와 꾸준히 거래를 체결하고 있다. 지난 5월 현대건설과 620억원 규모의 1년 만기 구매카드 약정을 체결했다.

건설사들은 부동산 경기 악화에 건설채를 찾는 수요가 줄면서 자금조달 비용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부채비율도 지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 추가 신용등급 하락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구매전용카드를 이용하면 회계상 미지급금으로 처리돼 부채비율이 악화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건설사들이 적극적으로 해당 상품을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장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PF 우발채무 현실화와 맞물려 또다른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권준성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 국면에 진입하면서 건설사들의 현금 유동성이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IT조선 전대현 기자 jdh@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