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예치 서비스 업체 델리오가 새 회사를 세워 델리오의 빚을 모두 넘기겠다고 밝혔다. 또한 가상자산사업자(VASP)가 있는 기존 델리오 법인은 매각해 채무변제에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재확인했다. 델리오는 2500억원 상당의 가상자산을 빼돌린 뒤 예고 없이 입출금을 중단해 재판을 받고 있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들은 델리오의 계획에 대해 현실성이 없다며 재판에서 감형을 바라고 한 행동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20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델리오 측은 전날 피해자 대상 공지를 통해 “신규 법인을 설립하고 델리오의 모든 채권·채무를 신규 법인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채무가 없어진 델리오는 VASP가 필요한 기업에 매각하고 매각 대금은 채무를 떠안은 신규 법인에 넘기겠다”고 덧붙였다.
델리오 측은 “2022년에 매출이 없는 몇몇 VASP 취득 기업들이 240억~500억원에 매각된 사례가 있어 (델리오 매각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오는 7월부터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본격 시행되면 VASP 취득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에 일반 기업의 수요도 증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델리오는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 업체로 비트코인·이더리움 등을 예치하면 연 10%가량의 수익을 보장해 준다고 광고하며 가상자산을 끌어모았다. 그러다 지난해 6월 돌연 가상자산 입출금을 중단하면서 ‘먹튀’ 논란이 불거졌다.
델리오 대표이사 정모(51)씨는 2021년부터 8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2800여명에게서 2500억원가량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특정금융정보법 위반)를 받고 있다. 현재 정씨는 서울남부지법에서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는 중이다.
정씨는 입출금 중단 사태 직후부터 본인 지분을 매각하거나 신사업을 유치해 돈을 벌어 피해자들의 투자 자산을 되돌려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와 델리오 법인이 짊어진 채무 등으로 매각에 난항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문제를 해결하고자 델리오는 신규 법인을 세운 후 델리오의 채무를 신규 법인에 넘겨 델리오의 채무 상황을 깨끗이 만들 방안을 고안했다. 채무에서 벗어난 델리오는 VASP를 내세워 매각하고 매각 대금을 채무변제에 쓰겠다는 게 델리오의 새로운 계획이다.
델리오의 자신감과 달리 가상자산업계에서는 델리오의 새 계획에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현재 VASP가 있는 사업자들도 사업이 안 돼 문 닫는 마당에 VASP 하나 가진 것만 내세워 수백억원 값을 받고 회사를 팔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전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델리오의 이번 계획에 대해 실현 가능성을 떠나 법정에서 쓸 ‘패’(霸) 용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제민주주의21 소속 예자선 변호사는 “모든 채권자 동의만 있으면 채무 관계 이전엔 법적인 문제가 없다”면서도 “델리오의 이번 계획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채무 변제 노력을 보여주고, 일부 피해자가 채무 이전을 허락할 시 피해자와 협조적 관계라는 주장에 활용하려는 수단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