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손민균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법정관리·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 등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기업의 부실채권을 신속하게 인수하기 위해 이사회 승인 없이 매입할 수 있는 채권 금액을 기존 10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상향한다. 부실채권이란 원리금(원금+이자)을 제때 갚지 못해 연체된 대출채권을 가리킨다. 고금리 장기화와 경기 침체 여파로 늘어난 한계기업의 정상화를 빠르게 지원하고, 금융회사로의 부실 전이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부실자산 처리 전문 공공기관인 캠코는 최근 이사회 의결을 통해 ‘부실채권 인수 업무규정’ 일부를 개정했다. 이사회의 심의·의결 없이 인수할 수 있는 특별채권과 기업개선채권의 매입금액을 기존 100억원 미만에서 300억원 미만으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캠코가 신속 처리를 위해 부실채권 매입 한도액을 증액한 것은 27년 만이다.

특별채권은 법정관리 등 회생절차 신청 후 회생계획 인가 결정이 확정된 기업의 채권을 말한다. 기업개선채권은 채권은행협의회의 워크아웃이 진행 중인 기업의 채권을 뜻한다. 캠코 관계자는 “부실채권 적기 인수를 통해 기업 정상화 효과를 높이고 채권 관리의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해 규정을 개정했다”라고 설명했다.

캠코는 이번 개정으로 한계 중소기업에 대한 빠른 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경우 토지, 건물, 기계를 포함한 공장 전체를 담보로 금융회사에 돈을 빌리기 때문에 채권금액이 100억원이 넘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캠코가 이를 인수하기 위해선 이사회의 승인이 필요해 신속 협의 대상에서 주로 제외돼 왔다. 캠코가 2018년 이후 인수한 특별채권은 단일 차주(돈 빌린 기업) 기준 총 188건으로, 이 중 매입액이 100억원이 넘는 경우는 2건에 불과했다.

그래픽=손민균

금융권 관계자는 “얼어붙은 경기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이 늘고 있는데, 정부의 지원 하에 재무구조 개선 작업이 빠르게 이뤄지면 파산행을 선택하는 기업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파산을 신청하는 법인은 증가하는 추세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법원에 접수된 법인 파산 건수는 1657건으로, 2021년(955건), 2022년(1004건)과 비교해 각각 74%, 65% 급증했다.

또 한계기업에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의 재무 부담도 낮출 수 있게 된다. 캠코가 수백억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사들이면, 금융회사는 연체율을 낮출 수 있어 건전성을 개선할 수 있다. 캠코는 최근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여파로 연체율이 치솟은 새마을금고 부실채권 2000억원어치를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저축은행들이 보유한 20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도 사들이기로 했다.

이에 따라 캠코가 올해 인수하는 부실채권 규모는 늘어날 전망이다. 캠코가 시장에서 사들인 부실채권 규모는 2021년 826억원에서 2022년 1951억원, 2023년 1조3197억원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캠코 관계자는 “기업 정상화 지원 사업에 배정된 예산(7651억원) 내에서 탄력적으로 특별채권, 기업개선채권을 인수할 예정이다”라며 “한도 내에서 채권을 인수하기 때문에 재무적 위험이 크게 증가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