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회계제도(IFRS17)에서 보험계약마진(CSM)의 중요성이 커지자 생명보험사들이 제3보험 영역에 힘을 쏟고 있다. 제3보험은 건강보험을 비롯해 암보험과 어린이보험 등 사람의 질병·상해를 보장하는 것으로 손해보험사가 지난해 기준 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손해보험과 생명보험 업권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무한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1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생명보험사의 저축성보험(연금저축·퇴직연금 제외) 신계약 누적 금액은 21조4358억원으로 2022년 말 기준 전체 저축성보험 규모(43조8230억원)보다 51% 줄었다. 2021년 말 기준(37조8016억원)과 비교해서도 43.2% 줄어든 수준이다.
반면 건강보험 분야는 큰 폭으로 늘었다. 신계약 건수 기준 보장성 보험 중 사망 외 담보 비중은 올해 1분기 72.8%에서 2분기 80.7%, 3분기 74.8%, 4분기 75.1%로 증가 추세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계속된 단기납 종신보험 열풍으로 종신보험 신계약 건수가 증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비중은 80%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생명보험사들은 최근 손해보험사의 고유 영역인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일배책)을 판매하겠다는 주장을 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배책은 일상생활 중 다른 사람에게 신체·재산상 피해를 줄 경우 손해를 보상하는 상품이다. 현행법상 손해보험사만 판매할 수 있는데, 손해보험사는 일배책을 어린이보험 등에 탑재해 판매하고 있다. 일배책이 없는 생명보험사는 어린이보험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생명보험사들이 제3보험 영역에 힘을 쏟는 것은 주력 상품이었던 저축성 보험과 종신보험의 인기가 사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저축성 보험은 IFRS17에서 판매할수록 손해가 되는 상품으로 전락했다. 종신보험의 경우 1인 가구가 증가하고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인기가 줄었다. 2018~2020년 생명보험사의 종신보험 신계약 금액은 80조~89조원에 육박했지만, 2021년 53조원으로 쪼그라들고 지난해 말에는 65조원에 그쳤다.
실제 이달 주요 생명보험사의 신상품을 봐도 건강보험의 보장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지난 3월 환급형 건강보험이라는 ‘플러스원 건강보험’을 출시했다. 보험 기간이 종료되면 그동안 낸 보험료보다 더 많은 돈을 돌려준다는 것이다. 암보험에 가입해 암에 걸리지 않으면 수천만원을 낭비한다는 이미지에서 탈피해 고객을 끌어모으겠다는 것이다. ‘다모은 건강보험 S3′도 출시할 계획이다.
한화생명은 오는 15일부터 ‘The H 건강·간병보험’의 최소가입금액을 기존 100만~200만에서 모두 50만원으로 낮추고 간편 가입 가능한 암보험의 고지항목을 ‘3.0.2′로 낮췄다. 암에 걸렸던 고객도 암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병자 보험에 붙는 숫자는 가입자가 보험사에 알려야 하는 질병 진료 기간이다. 통상 ‘3.5.5′가 보통인데, 최근 3개월 내 입원·수술·재검사 등 필요 소견 여부, 최근 5년 내 입원·수술 이력 여부, 최근 5년 내 암 등 주요질병 발병 여부를 묻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출생은 안 하고 젊은 세대의 종신보험 니즈는 줄어들고 변액연금보험 시장은 죽어있기 때문에 생명보험사들은 건강보험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생명보험사들은 제3보험이 아니더라도 종신보험이나 변액보험의 시장이 성장세에 있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이제 상황이 역전됐다”라며 “논란에도 2003년 손해보험사가 장기보험을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처럼 일배책도 열어달라는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