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청에서 열린 일자리박람회를 찾은 어르신. /뉴스1

한 번에 목돈을 내고 노후에 연금을 받는 일시납 연금보험이 매월 보험료를 내는 월납 연금보험보다 장기적으로 불리하게 설계된 것으로 나타났다. 처음부터 큰돈을 굴리는 예금이 월 적립식으로 운용되는 적금보다 더 많은 이자를 받는다는 상식과는 반대인 것이다. 월납 상품에 가입할 수 없는 고객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매력적이지 못한 상품에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1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DGB생명은 연 단리 5%를 최저보증하는 연금보험을 판매하면서 가입자가 일시납과 월납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일시납을 선택하면 목돈을 내고 특정 시점부터 매년 연금을 평생 받을 수 있다. 월납은 매월 일정 금액을 납부하는 형태다. 같은 이자율을 적용받고 연금 수령액 계산 방법도 동일하지만, 보험료 납부 방법에만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이 더 유리할까. 50세 남성이 1억원을 내고 70세부터 연금을 개시하면, 매년 900만원을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 반면 같은 돈을 10년 동안 나눠서 내면(월 83만원) 연금액은 960만원이 된다. 처음부터 1억원에 이자가 붙는 일시납이 10년 동안 적립식으로 운용되는 월납보다 더 불리한 것이다.

이는 보험사가 지급률을 다르게 설정했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은 보험 가입 기간 동안 이자를 받아 쌓은 적립금에 지급률을 곱한 값으로 결정된다. 이자율이 같다면 지급률이 얼마인지에 따라 연금액이 달라지는 구조다.

DGB생명의 경우 일시납의 지급률을 4.5%로 설정한 반면 월납은 5%로 더 높였다. 특히 계약을 장기간 유지할 경우 보너스로 지급되는 장기유지가산율도 지급률에 영향을 미치는데, 월납은 10%에 달하지만 일시납은 아예 없다. DGB생명 외 다른 생명보험사들도 일시납 상품에 장기유지가산율을 적용하지 않거나, 적용하더라도 월납보다 더 적게 설정하고 있다. 일시납을 선택하고 오래 거치하면 거치할수록 상대적으로 불리해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다.

그래픽=정서희

일각에선 보험사가 이처럼 상품을 설계한 이유는 일시납의 리스크가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일시납은 추가 보험료 납부 부담이 없어 해지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최소 5년, 많게는 10년 이상 보험료를 내야 하는 월납은 경기침체가 이어지는 등 가계 사정이 악화되면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가 많다. 생명보험 가입 후 5년 뒤 계약을 유지하고 있는 비율은 39.8%다. 10명 중 6명이 5년도 지나지 않아 계약을 해지한다는 뜻이다. 무·저해지 상품처럼 해약환급금이 없거나 적은 상품의 중도 해지자가 많아질수록 보험사는 이득을 본다. DGB생명의 경우 해약환급률은 100%를 넘지 않는다.

다만 거치 기간을 짧게 가져가면 일시납이 월납보다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건으로 연금 개시 시점을 70세에서 65세로 앞당기면 일시납은 743만원, 월납은 673만원을 매년 연금으로 받는다. 또 월납 형태로는 가입이 불가능한 5년 거치도 가능하다. 60세가 목돈을 한 번에 넣고 65세부터 곧바로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월납에 가입할 수 없거나 계약을 10년 이상 유지하기 힘든 고객이 선택하는 상품인 것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연금액이 적기 때문에 매력적이진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60세 남성이 1억원을 내면 65세부터 매년 531만원을 연금으로 받을 수 있다. 84세가 돼야 낸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수준이다. 통계청 기준 60세 남성의 기대수명이 82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원금 회수도 불가능할 수 있다. 만약 90세까지 생존하면 2700만원을 추가로 받는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일시납이 월납보다 처음부터 굴릴 수 있는 돈이 더 크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연금액도 높아야 하는 것은 맞다”라면서도 “반대의 경우라면 보험사가 자신들만의 조건에 따른 것이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