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에 설치된 시중은행 ATM 기기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올해 들어 2조원에 달하는 상생금융 방안을 추진 중인 은행권이 금융 당국의 요청에 따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연착륙 지원에 약 8000억원을 출자할 전망이다. 은행이 서민금융진흥원에 내는 출연금도 곧 인상될 예정이다. 은행권에선 “은행이 이번 정부의 ‘돈줄’로 전락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과 보험사가 1조원 규모로 조성하는 PF 신디케이트론이 다음 달 중순 가동된다. 은행과 보험사는 협의체를 구성하고 신디케이트론 세부 운영 방안을 마련 중이다. 신디케이트론은 PF 사업장 사업성 평가 결과에 따라 경·공매를 진행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경락자금대출, 부실채권(NPL) 매입 지원, 일시적 유동성 위기 지원 등 3개 유형으로 공급된다.

내부적으로 은행이 80%, 보험이 20%를 각각 부담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이 총 8000억원을 부담해야 한다.

은행권은 연내 신디케이트론 1조원이 조기 소진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 당국은 약 230조원 규모의 전체 PF 사업장 가운데 경·공매로 정리해야 하는 ‘부실 우려’ 등급 대상을 2~3%(2조~3조원) 수준으로 추산했다. 150여곳의 사업장이 하반기 경·공매로 일시에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1조원으로는 이 사업장을 지원하기도 빠듯하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은 필요하면 신디케이트론을 최대 5조원까지 늘리거나 참여 금융사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은행들은 부실 가능성이 있는 PF 시장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건전성 관리 차원에서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금융 당국의 요구에 따라 사실상 ‘울며 겨자 먹기’로 신디케이트론에 출자한다는 것이다. 금융 당국이 제시한 인센티브도 대부분 올해 말 종료돼 큰 효과가 없다는 반응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 당국이 초기 규모의 5배인 5조원까지 신디케이트론을 늘릴 수 있다고 밝힌 것은 그 정도 자금이 투입될 수도 있다는 의미 아니겠냐”며 “자금 지원 여력이 있다는 이유로 PF 정상화에 동원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본다”고 했다.

그래픽=손민균

금융사들이 서민금융진흥원(서금원)에 출연하는 출연요율도 곧 인상된다. 금융위원회는 금융사가 가계대출 금액에 따라 서금원에 출연하는 ‘공통출연금’ 요율을 현행 가계대출액의 0.03%에서 은행은 0.035% 인상하기로 했다. 보험·상호금융·여신전문·저축은행 등은 0.45%로 올려 내년 말까지 적용한다. 은행권은 상생금융 방안으로 서금원에 2214억원을 별도로 기부해 출연요율을 타 업권에 비해 낮게 적용받았다. 이번 개정안이 내년 시행되면 금융사들은 서금원에 1039억원을 추가 출연해야 한다.

은행은 올해 들어 2조1000억원 규모의 상생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PF 연착륙과 서민금융 지원 확대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수천억에서 수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내야 한다는 데 부담을 토로하고 있다. 은행 일각에선 “보수 정권이 더 심하다”는 불만까지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요즘 은행 직원들 사이에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말이 나온다”며 “이런 식으로 비용이 증가하면 결국 대출 금리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