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은행의 올해 1분기 신탁 수수료 수익이 지난해와 비교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 사태가 불거진 후 지난 1월 ELS 판매를 전면 중단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홍콩 H지수 ELS 판매 규모가 가장 큰 KB국민은행의 경우 신탁 수수료 수익이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17% 급감했다. 반면 ELS 판매를 중단하지 않은 우리은행은 수익이 10%가량 늘었다.
2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의 올해 1분기 신탁 수수료 수익은 총 1774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1896억원) 대비 6.4% 감소했다.
은행별로는 KB국민은행의 신탁 수수료 수익이 567억원에서 471억원으로 17% 줄었으며,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이 각각 7.3%, 5.3% 수익이 감소했다. ELS 판매를 중단하지 않은 우리은행만 유일하게 신탁 수수료 수익이 증가했다. 우리은행의 올해 1분기 신탁 수수료 수익은 406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370억원)보다 9.8% 증가했다.
신탁이란 고객 재산의 소유권을 넘겨받아 운용·관리하는 것으로, 늘어나는 자산관리 수요에 은행권이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이다. 은행은 증권사가 발행한 ELS를 신탁자산에 편입한 형태의 주가연계신탁(ELT)을 판매하는데, 통상 신탁자산 평가 금액의 1% 내외를 중개 수수료로 받고 집행 및 관리 보수를 별도로 챙긴다. 신탁 수수료 수익에서 ELT 판매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은행별로 차이가 있지만 20~3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탁 수수료 수익이 올해 1분기 줄어든 것은 은행 대부분이 일제히 ELS 판매를 중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지난 1월 29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은행에서 ELS를 판매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고, 하나은행은 이날 즉각 ELS 판매를 잠정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은행과 신한은행도 “금융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어 소비자 보호를 위한 관리가 필요하다”며 ELS 판매를 중단했다.
우리은행은 당시 ELS 판매를 중단하지 않았다. 홍콩 H지수 ELS 잔액 규모가 다른 은행에 비해 미미해 불완전판매 논란에서 다소 빗겨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의 홍콩 H지수 ELS 판매 잔액은 400억원으로, KB국민은행(7조8000억원), 신한은행(2조4000억원), NH농협은행(2조2000억원), 하나은행(2조원)과 비교해 규모가 적은 편이다. 다른 은행이 ELS 사태로 주춤하는 때를 노려 자산관리 시장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전략적 판단도 깔려있다. 우리은행은 지난 3월 초 “자산관리 전문 은행으로 도약하겠다”며 자산관리 전문가를 보강하고 서비스 영역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은행의 ELS 판매는 금융 당국의 고위험 금융투자상품 판매 제도 개선 후 순차적으로 재개될 전망이다. 금융 당국은 이르면 6월 중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ELS 판매를 금지하기보다는 은행 판매 채널 및 판매 직원의 자격 조건을 강화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원금을 잃을 위험이 큰 투자상품은 PB(프라이빗 뱅커)센터에서, 전문성을 갖춘 직원만 팔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또 사전 교육을 이수한 투자자에게만 고위험 투자상품을 팔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