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결제형 가상화폐로 주목을 받았던 페이코인이 지난달 재상장된 후 연일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페이코인은 지난해 금융 당국으로부터 자금 세탁 등의 위험이 크다는 지적을 받고 국내 사업에 제동이 걸렸는데, 재상장 이후에도 문제를 개선하지 않아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9일 오후 4시 현재 국내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인 코인원에서 페이코인은 전날보다 1% 하락한 160.7원에 거래되고 있다. 최근 5일 연속 전날 대비 하락했다. 페이코인은 지난달 19일 코인원에 재상장된 직후 잠시 투자가 몰리며 358.9원까지 올랐지만, 이후 계속 내림세를 보이며 고점 대비 절반 밑으로 가격이 떨어졌다.
앞서 지난달 15일 페이코인에 대한 거래 지원을 재개했던 거래소 코빗에서도 이날 현재 161.1원에 거래되면서, 재상장 당일 고점(510원) 대비 68.4%의 하락률을 보였다.
페이코인은 국내 휴대전화 결제 서비스 기업인 다날이 발행하는 가상자산이다. 비트코인 등 대부분의 가상자산이 국내에서 결제에 활용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페이코인은 지난 2019년 출시 당시부터 결제에 특화된 가상자산으로 주목을 받았다.
발행사인 페이프로토콜은 다날의 국내 온·오프라인 가맹점 15만곳과 제휴를 맺고 페이코인을 활용해 물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사업을 설계했다. 다날의 가맹점 이용자들이 페이코인으로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면 다날은 해당 가맹점에 현금을 주고 페이코인을 받는 방식이다.
다날은 페이코인 생태계 확장을 위해 여러 할인 혜택을 제공하기도 했다. 출시 이듬해인 2020년 GS25와 CU, 세븐일레븐 등 대형 편의점 체인들과 손잡고 페이코인으로 구매하면 15%까지 물건 값을 할인했다. 또 여러 외식업체 등과의 제휴를 통해 최대 50%까지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도 자주 진행했다. 2021년에는 KT, LG유플러스 이용자들이 페이코인으로 통신 요금을 결제할 경우 최대 50%의 할인율을 적용했다.
이 같은 혜택 제공과 마케팅을 통해 국내 페이코인 이용자 수는 한때 320만명까지 증가했다. 빠른 성장과 함께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페이코인 가격도 강세를 보이며 2021년 2월 4670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페이코인의 성장이 꺾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22년 금융 당국이 자금 세탁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사업에 제동을 걸고 나선 이후부터다. 금융위원회는 페이코인이 현금화 과정에서 자금 세탁에 악용될 수 있다며, 페이프로토콜에 시중은행 실명계좌를 확보하라고 요구했다.
페이프로토콜은 전북은행 등으로부터 실명계좌를 발급 받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금융위가 제시한 기간을 맞추지 못해 국내 사업을 중단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협의체인 닥사(DAXA)도 지난해 4월 페이코인에 대해 상장 폐지 결정을 내렸다.
재상장 이후 한 달 간 페이코인 가격이 계속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국내에서 쓰임새가 사라져 과거에 비해 활용 가치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페이코인은 지난해 상폐 처분을 받은 후 국내에서 결제 서비스를 중단하고, 해외 결제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달 취임한 손경환 다날핀테크 신임 대표도 “페이코인의 세계화에 힘쓰겠다”며 사실상 해외 결제 사업에만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출시 후 3년 간 눈에 띄게 성장했던 국내 시장과 달리, 해외에서 페이코인 사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페이코인은 일본 스타트업인 모빌렛과 손잡고 올 상반기 중 일본과 싱가포르에서 결제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는 다날과 제휴를 맺은 가맹점을 통해 빠른 확장이 가능했지만, 해외 시장은 결제 서비스의 성공 여부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앞서 재상장됐던 위믹스도 국내에서 P2E(Play to Earn·게임을 하면서 수익을 얻는 것) 게임 규제로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해 줄곧 하락했다”면서 “페이코인도 국내에서 사업이 막힌 상황에서는 과거와 같은 상승세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