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장기화 속 가계와 기업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은행권 자산 건전성도 크게 악화했다. 올해 들어 주요 은행들의 대출 연체율은 부문별로 일제히 상승했다. 가계보다는 기업이, 기업 중에서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상대적으로 높은 연체율을 기록했다. 은행들은 대규모로 쌓인 부실 채권을 상각하거나 매각하는 방식으로 자산건전성을 유지하고자 하나, 고정이하여신(NPL) 비율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올해 1분기 말 기준 단순 평균 대출 연체율은 0.32%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0.27%)와 함께 전 분기(0.29%)보다도 상승했다.
부문별로 살펴보면 가계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1분기 말과 4분기 말에 각 0.24%, 0.26%에서 올해 1분기 말 0.28%로 상승했다. 지난 2월 말에는 0.32%까지 오르기도 했다. 기업 부문은 상황이 더 나빴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1분기 말 0.30%에서 4분기 말 0.31%로 소폭 상승한 뒤 올해 1분기 말 0.35%로 뛰었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은 각 0.34%, 0.37%, 0.41%로, 대기업은 각 0.03%, 0.05%, 0.07%로 연체율이 계속해서 올랐다. 지난 2월 말 기준 중소기업은 0.55%, 대기업은 0.13%, 기업 전체로는 0.47%의 높은 연체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각 사 실적 자료(팩트북)를 기초로 단순 평균 계산한 5대 은행의 2019년 1분기 말 기준 대출 연체율은 0.33%로 올해 1분기 말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기업 부문에서는 건설업 연체율이 유독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가시지 않은 가운데 건설업종 내 한계기업이 속출하는 것으로 보인다.
농협은행을 제외한 4대 은행의 1분기 말 기준 단순 평균 건설업 연체율은 0.78%로, 전년 동기(0.37%)의 2배 이상으로 집계됐다. 이 중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건설업 연체율이 1%를 넘어섰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1분기 말 0.28%에 그쳤던 건설업 연체율이 같은 해 4분기 말 0.75%, 올해 1분기 말 1.18%로 급등했다.
하나은행도 같은 기간 0.28%에서 0.33%, 1.13%로 건설업 연체율이 올랐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1분기 말과 4분기 말 각 0.26%, 0.27%로 비슷한 수준이 유지되다가 올해 1분기 말 0.41%로 올랐다. 우리은행의 경우 지난해 1분기 말 0.46%에서 4분기 말과 올해 1분기 말 각 0.39%로 오히려 낮아졌으나 전체 기업 연체율(0.28%)보다는 월등히 높았다.
앞서 한국은행은 “최근 분양시장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고금리 지속, 공사비 상승 등의 비용 부담 증대로 건설업 및 부동산업의 재무 위험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은행들은 자산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부실 채권을 대거 상각 또는 매각하고 있다. 5대 은행은 올해 1분기 중에만 1조6079억원 상당의 부실 채권을 상각하거나 매각했다. 이는 지난해 1분기의 8536억원보다 88.4% 늘어난 규모다. 지난 2022년 1분기(4180억원)와 비교하면 상·매각이 불과 2년 새 4배 가까이 급증했다.
은행들은 3개월 이상 대출 원리금 상환이 연체된 채권을 고정 이하 등급의 부실 채권으로 분류해 별도 관리하다가 회수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되면 떼인 자산으로 간주한다. 이후 장부에서 아예 지워버리거나(상각) 자산 유동화 전문회사 등에 헐값에 파는(매각) 방식으로 처리한다.
문제는 차주(돈 빌리는 사람)들의 연체가 급속히 늘면서 은행들의 공격적인 상·매각보다 더 빠른 속도로 부실 채권이 쌓이고 있다는 점이다. 5대 은행의 올해 1분기 말 기준 단순 평균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0.28%로, 지난해 1분기 말의 0.27%보다 0.01%포인트(p) 상승했다. 가계 부문은 0.17%에서 0.18%로, 기업 부문은 0.31%에서 0.33%로 고정이하여신 비율이 확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