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금(金)’이라 불리며 새로운 안전자산으로 꼽혔던 비트코인의 가치가 최근 흔들리고 있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분쟁으로 중동 정세의 불안감이 커진 후 전통의 안전자산인 금은 가격이 상승한 반면, 비트코인은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오전 9시 현재 국내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인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은 전날보다 1% 내린 9135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비트코인은 지난 8일 1억300만원을 기록한 후 줄곧 약세를 보이며 최근 열흘간 11% 넘게 떨어졌다.
달러화 기준 가격으로 보면 더 큰 폭으로 하락했다. 가상자산 통계분석 사이트인 코인게코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8일 7만2300달러에서 17일 기준 6만1270달러로 10일 만에 16%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이란과 이스라엘의 분쟁으로 중동에서의 무력 충돌이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란은 지난 13일(현지시각) 수백 대의 드론과 미사일을 투하해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지난 1일 이스라엘의 시리아 공습으로 이란 혁명수비대(IRGC) 고위급 인사 2명이 사망하자 보복에 나선 것이다. 이란이 이스라엘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은 이란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된 이후 큰 폭으로 상승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금 선물 가격은 이란의 이스라엘 공습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던 지난 12일 온스당 2418달러에 마감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값은 장 중 한때 2448.8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금 선물 가격은 이후 조정을 받았지만, 최근 며칠간 다시 반등하며 2400달러선 초반에 거래되고 있다. 반면 비트코인은 이란과 이스라엘의 충돌 이후 떨어진 가격을 회복하지 못한 채 계속 약세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비트코인은 대표적인 위험자산으로 꼽히지만, 최근 새로운 안전자산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가격 변동성이 크지만, 금처럼 공급량이 제한돼 있어 인플레이션(물가상승)과 화폐 가치 하락 등 여러 변수에도 높은 방어력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비트코인과 금값은 여러 차례 비슷한 가격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중동 정세의 불안감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강세를 보이는 금과 달리 비트코인 가격이 연일 하락하자, 금융 시장에서는 비트코인의 리스크 회피(헤지) 가치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의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가상자산 전문가로 꼽히는 밥 엘리엇은 최근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지정학적 위기가 비트코인 가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이 많았지만, 최근의 가격 흐름은 이 같은 믿음이 틀렸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면서 “비트코인은 지정학적 위기를 회피하는 수단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최근의 가격 하락은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에서 매도 물량이 쏟아졌기 때문일 뿐 위험 회피 자산으로써 가치가 퇴색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가장자산업계 한 관계자는 “곧 비트코인 채굴 보상이 평소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드는 반감기가 도래하는 데다, 홍콩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등 가격이 오를 만한 호재도 많다”면서 “중동 정세가 안정을 찾은 후에는 가격이 반등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