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국내 전(全) 금융회사의 해외 부동산 등 대체투자 자산 운용 현황에 대한 점검에 나섰다. 지난해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급락해 대체투자 자산 부실화가 본격화되자 선제적으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금융 당국은 점검 결과를 바탕으로 손실 반영 및 충당금(떼일 것에 대비해 쌓는 돈) 적립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실태 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이달 초까지 은행·보험·증권·상호금융·저축은행 등 전 금융사를 대상으로 대체투자 자산운용 현황에 대한 전수 조사를 진행했다. 대체투자는 주식·채권 이외의 부동산·인프라·사모펀드 등에 대한 투자를 뜻한다. 고위험·고수익이 특징이다.
금감원은 이번 조사를 시작으로 매달 초 금융사로부터 대체투자 자료를 취합해 해외 투자 내역을 사업장 단위로 데이터베이스(DB)화할 계획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은 지난달 말 은행업 감독업무 시행세칙 개정을 통해 대체투자 자산운용 현황을 업무 보고서에 포함하도록 했다”며 “대체투자 자산 비중이 높은 보험사 등 타 금융사에 대해서도 상시 감독을 강화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달 28일 은행권의 대체투자 모니터링을 위해 업무 보고서에 관련 서식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은 은행업 감독업무 시행세칙을 개정했다. 업무보고서 서식을 신설해 ‘대체투자 기초자산별 투자 잔액, 건전성 분류, 충당금 적립액, 잔존만기, 투자 지역·국가’ 등을 보고하도록 했다.
금감원이 대대적인 점검에 나선 것은 해외 대체투자 자산 부실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지난 2월 발표한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내 금융사의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잔액은 56조4000억원으로, 이중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생한 규모는 2조4600억원(개별 부동산 기준)이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EOD 규모가 1조3300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3개월 만에 1조원 넘게 급증한 것이다. EOD 사유는 임대료 수입 부족으로 대출이자가 밀리는 등 현금흐름에 문제가 생기거나,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담보인정비율(LTV)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게 됐을 때 발생한다.
업권별로 살펴보면 보험사 투자 규모가 가장 크다. 국내 보험사가 보유한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잔액은 31조9000억원으로 전체의 57%를 차지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자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해외 상업용 부동산과 사회기반시설(SOC) 등에 대한 투자를 늘려온 영향이다. 금감원은 이번 조사에서 보험업권의 대체투자 자산운용 현황을 집중 점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밖에 은행 10조1000억원(18%), 증권 8조4000억원(15%), 상호금융 3조7000억원(7%) 순이다.
다만 금감원은 대체투자 손실이 국내 금융 시스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 부동산 투자 잔액이 금융권 총자산(6800조9000억원)의 0.8%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2월 “해외 부동산 펀드 만기는 앞으로 몇 년 동안 분산돼 있고, 투자자도 대부분 기관투자자다”라며 “피해 규모가 손실요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크지 않고, 손실 흡수능력도 훨씬 있어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고 했다.